[헬기, 서울 도심 아파트 충돌] 착륙직전 왜 급격히 기수 틀었나? 풀리지 않는 의혹들…

입력 2013-11-17 18:12 수정 2013-11-18 01:38


LG전자의 시콜스키 S-76C 헬기 사고는 이륙부터 충돌까지 석연치 않은 부분이 많다. 헬기는 한강 둔치의 잠실헬기장 도착 직전 무슨 이유에선지 갑자기 오른쪽으로 급격히 기수를 틀면서 아파트와 충돌했다. 평소 잘하지 않던 토요일 비행 지시가 내려갔고 이륙 때부터 기상이 좋지 않았는데도 비행은 강행됐다.

◆ 갑작스런 우회전…청와대 비행금지구역 피하려?=짙은 안개 속에서 청와대를 중심으로 한 비행금지구역을 피하려다 헬기가 경로를 이탈했을 수 있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육군항공대 조종사 출신인 구미대 헬기정비과 최쌍용 교수는 “한강을 따라 이동하다 순간적으로 안개 때문에 아무것도 안 보이자 비행금지구역인 ‘P73’ 공역을 침범할 것을 우려해 오른쪽(한강 남쪽)으로 방향을 틀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청와대를 중심으로 한 비행금지구역 P73은 알파(A)와 브라보(B)로 나뉘며 한강 북부 지역을 대부분 포함한다. 당시 헬기는 위성항법장치(GPS)의 도움을 받지 않고 육안에 의존하는 시계비행 중이었다. 조종사가 감각에 의지해 P73 공역을 피하려고 ‘우회전’을 하다 보니 항로를 이탈해 고층건물 지대로 들어섰으리란 것이다.

통상 시계비행 중 시야가 흐려지면 계기비행으로 전환한다. 사고기 역시 계기비행으로 전환하는 기능을 갖췄지만 도착지인 잠실 헬기장에는 이를 뒷받침해줄 계기비행 유도·착륙 시스템이 없었다. 최 교수는 “잠실 헬기장은 시계비행 전용 헬기장”이라며 “계기비행 시스템이 없어 기장이 안개를 만나 계기비행으로 전환하려 해도 사실상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짙은 안개 때문에 착륙장이 보이지 않아 착륙을 포기하고 선회하다 충돌했으리란 의견도 나왔다. 아시아나항공 기장 출신인 정윤식 중원대 교수는 “잠실 착륙장이 안 보일 만큼 날씨가 나빠 김포공항으로 돌아가려 한 것 같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영동대교 근처까지 온 이상 청와대 비행금지구역 때문에 북쪽으로는 선회할 순 없고 남쪽으로 틀었을 것”이라며 “남쪽 항로인 대치교, 양재나들목 쪽으로 가는 길에 현대아이파크 아파트가 있다. 아파트 북서쪽 면에 헬기가 부딪힌 것도 이 때문인 듯하다”고 설명했다.

◆ 안개 속 무리한 비행, 왜?=안개가 짙게 끼었는데 비행을 강행한 것도 의문이다. 오전 9시 서울 송월동 기상관측소에서 측정한 가시거리는 1.1㎞로 운항에 무리가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안개 관측은 무인자동기상관측장비(AWS)가 아닌 사람에 의존한다. 국지적·일시적 특성 때문에 지역별로 세밀하게 관측·예보하기가 현실적으로 어렵다.

한강변에 자리 잡은 현대아이파크 아파트 주변에는 송월동 관측치보다 훨씬 짙은 안개가 꼈다는 증언도 나왔다. 한 주민은 “집에서 창밖으로 거리의 자동차가 안 보일 만큼 안개가 짙었다”고 말했다. 사고 지점과 5㎞ 정도 떨어진 공군 성남기지의 가시거리는 800m였다.

헬기가 이동한 항로는 항공관제소에서 계기비행을 허가하지 않는 지역이다. 도심 인구밀집지역을 통과하기 때문에 계기비행을 해야 할 정도로 기상이 나쁘다면 아예 운항하지 말라는 취지다. 이에 숨진 박인규(58) 기장도 출발 전 LG전자 측에 “안개가 짙은데 (잠실 대신) 김포공항에서 출발하는 게 어떻겠느냐”고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헬기는 김포공항 시정이 호전되자마자 잠실을 향해 서둘러 이륙했다.

LG전자 관계자는 “박 기장이 출발 1시간 전 잠실 경유가 가능하다고 알려와 임직원들이 예정대로 (잠실에서) 타기로 결정했다”며 “당시 헬기에는 최고기술책임자(CTO) 안승권 사장 등 임직원 4명이 탑승할 예정이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잠실 헬기장 관계자가 헬기장에 나와 있던 LG전자 직원들에게 “‘시계가 너무 흐려 착륙하기 위험하다’고 경고했다”는 주장도 나왔다.

◆ 유족들 “높은 사람도 같이 가려 했다더라”=박 기장이 지난 6개월간 토요일에 비행한 건 나흘뿐이다. 유족들은 토요일인데도 운항을 강행해야 할 사정이 있었던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이날은 전북 익산에서 LG전자가 후원하는 한국여자야구대회 결승전이 예정돼 있었다.

박 기장의 아들은 “회사에서 계속 잠실로 와서 사람을 태우고 가라고 한 것 같다”며 “국회의원인지 확실치 않지만 높은 사람도 같이 간다고 얘기한 것으로 기억한다”고 말했다. 이에 LG전자 측은 “한국여자야구연맹 회장인 새누리당 김을동 의원에게 추락 헬기보다 1시간30분쯤 뒤에 출발하려던 (LG전자의) 다른 헬기 탑승을 제안한 적이 있지만 그 헬기에도 최종 탑승 명단엔 김 의원이 없었다”고 말했다.

김유나 박요진 기자 spri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