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말기유통법 제정 논란… 이통사 “보조금 과열은 제조사 탓” - 제조사 “이통사에 책임, 우린 약자”
입력 2013-11-17 17:48
국회에서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이하 단통법) 제정이 추진되면서 휴대전화 제조사와 이동통신사 간 갈등이 본격화하고 있다. 단통법은 이통사의 단말기 보조금뿐만 아니라 제조사가 지급하는 장려금도 규제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이통사는 과다한 휴대전화 보조금을 근절하기 위해서는 제조사 장려금도 반드시 규제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SK텔레콤과 KT는 구글 레퍼런스폰인 넥서스5를 국내에 출시하며 국내 제조사들을 압박하고 나섰다. 양사는 넥서스5 16GB 모델에 8만원의 보조금을 책정해 37만9800원에 판매키로 했다. 삼성전자 갤럭시S4나 LG전자 G2와 비교해 사양이 전혀 뒤처지지 않는 스마트폰을 절반도 안 되는 가격에 살 수 있다는 점을 내세우고 있다. 한 이통사 관계자는 17일 “넥서스5 가격은 국내 출고가에 거품이 있다는 걸 보여주는 사례”라면서 “출고가 자체를 낮춰 이용자 차별을 최소화하고 소비자 불신을 해소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통사들은 최근 보조금이 과열되는 데에는 제조사 보조금이 큰 영향을 끼쳤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지난달 시장에 과다한 보조금이 풀린 것은 제조사가 일부 제품의 ‘밀어내기’ 차원에서 일선 대리점에 장려금을 쏟아부었기 때문이라는 얘기다.
반면 제조사는 일부 구형 단말기를 빼고 최신 단말기에 과도한 장려금을 자발적으로 투입하는 경우는 없다고 반박한다. 한 제조업체 관계자는 “이통사에서 최신 모델에 장려금을 책정해달라는 요청이 오면 제조사는 거절할 수 없다. 거절하면 다른 업체에 제안하기 때문”이라며 “통신사 입장에선 가입자를 어떤 모델이든 상관없이 가입자만 끌어들이면 된다”고 말했다. 이통사가 단말기 유통구조까지 장악하고 있어 보조금과 관련해 궁극적인 책임은 이통사에 있다는 것이다. 가령 제조사가 20만원의 장려금을 이통사에 지급해도 이 중 일부만 반영할 수 있다는 게 제조사의 주장이다.
제조사들은 국내 스마트폰 시장이 얼어붙은 상황에서 단통법이 제정되면 ‘제2의 팬택 사태’가 나올 수 있다고 우려한다. 정부가 보조금 규제를 강화하면서 이통사들은 수익성이 오히려 좋아진 반면 제조사는 팬택처럼 어려움에 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장려금을 비롯해 제조사의 영업비밀을 공개하게 되면 더 큰 타격을 입게 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장려금 규모가 알려지면 해외 업체들도 같은 장려금을 요구할 수 있다는 걱정도 있다. 이에 따라 한국전자정보통신산업진흥회는 단통법에서 제조사에 대한 규제를 삭제해달라고 정부와 국회에 건의했다. 휴대전화산업 생태계 붕괴와 글로벌 경쟁력 약화가 우려된다는 이유에서다.
한편 미국 시장조사 업체 스트래티지 애널리틱스에 따르면 올 3분기 전 세계 스마트폰 시장에서 LG전자는 중국 화웨이, 레노버 등에 밀려 5위로 내려앉았다. 팬택도 중국 샤오미에 밀려 순위가 14위에서 15위로 떨어졌다. 중국 업체들은 전 세계 스마트폰 시장의 20%를 차지하며 국내 업체들을 맹추격하고 있다.
김준엽 기자 snoop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