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을 넘어 미래한국으로] 슈미트 괴델리츠 독일 동서포럼 이사장

입력 2013-11-17 17:19


“통일은 서로 알아가는 과정, 인내심 갖고 대화를”

악셀 슈미트 괴델리츠(71) 독일 동서포럼 이사장은 지난달 30일 독일 모카우 자택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통일 후에도 독일에선 동·서독 주민 간, 동독 주민 간 반목과 재산권 문제 등으로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도 통일이 되면 반드시 이런 문제가 나타나게 된다”면서 “대화를 통해 상대방을 이해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독일 통일 후 가장 문제가 된 것은 무엇이었나.

“현재 선거에서 옛 동독 집권당이었던 사회통일당(SED)의 후신인 좌파당의 득표율은 20%가량 된다. 그런데 옛 동독 지역에서 좌파당은 30% 이상의 표를 얻고 있다. 바로 동독 주민들이 통일에 대해 실망하고 있기 때문이다. 동독인들은 통일이 되면 집값도 싸지고, 훌륭한 교통 시스템과 사회복지 시스템을 마음껏 누릴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게 현실이다. 독일 통일 후 실업자가 많았다. 특히 동독 지역은 전체 독일 실업자 평균의 두 배나 됐다. 이전 동독에선 실업자가 없었다. 그래서 동독 주민들은 자신들이 2등급 시민이라고 생각하게 됐다.”

-동독 주민 사이의 반목은 무엇이었나.

“폭압정치의 도구가 된 사람과 이에 피해를 입은 사람의 관계다. 내가 이사장으로 있는 동서포럼에 두 사람이 초대돼 왔다. 한 명은 동독 비밀경찰인 슈타지 요원이었고, 다른 한 명은 이 슈타지 요원에게 체포돼 정치수용소에 6년 동안 구금됐던 사람이었다. 분위기가 무척 험악했다. 정치수용소에 갇힌 사람은 ‘왜 죄 없는 나를 그리로 보냈느냐’고 언성을 높였고, 전직 슈타지 요원은 ‘나는 국가에서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라고 말하더라. 일견 전직 슈타지 요원의 생각에 이해가 안 갈 것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라. 주민들을 사찰하는 것이 동독시대에는 일상적인 것이었다. 당신 같으면 지금까지 정상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하루아침에 잘못됐다고 주변에서 이야기하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그 밖에 큰 문제는 무엇이 있었나.

“바로 재산권 문제였다. 통일 후 많은 서독인들이 옛날에 동독 지역에 살던 집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했다. 예를 들면 동베를린에서 20∼30년을 산 사람이 있었다. 그런데 통일 후 갑자기 벤츠를 타고 온 서독 사람이 변호사를 데리고 와서 이 집에서 나가라고 했다. 이의가 있으면 이 변호사와 이야기하라고 했다. 동독 주민 입장에선 내 집에서 수십년 동안 살고 자식도 길렀는데 하루아침에 집에서 쫓겨난 것이다. 그리고 동독에선 변호사를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다. 어떻게 이의를 제기할 수 있겠는가. 말 한마디 못하고 짐 몇 개만 싸들고 정든 집을 나와야 했다. 이런 사례가 통일 후 1만건 정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 문제를 왜 단기간에 해결하지 못했나.

“통일 후 동독 지역은 사회주의에서 자본주의로 갑자기 시스템이 바뀌었다. 그래서 정부에선 많은 공무원들을 선발해 동독 지역에 투입했다. 조사에 따르면 약 3만4000여명의 공직자들이 서독에서 동독 지역으로 넘어갔다. 그런데 이들이 비전문가들이었다는 점이 문제가 됐다. 이들은 단순히 행정적인 일만 했지 동독 지역 주민들에 대한 심리적인 이해나 특수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전혀 준비되지 않았던 사람들이 자기네 식으로만 일을 처리한 것이다.”

-독일 통일 이후 남북한만 이제 유일한 분단국으로 남았다. 통일 후 북한 지역에서 해야 할 과제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먼저 경제적으로 실업자가 없어야 한다. 동독 지역 주민들이 2등 국민이라고 생각한 것은 일자리가 없었던 게 가장 큰 이유였다. 사람은 자기가 하는 일을 가지고 있으면 자신감이 생기고 존엄성도 가지게 된다. 통일 후 북한 지역 여러 곳을 경제특별구역으로 만들어 일자리를 창출하고 세금도 감면해줘야 한다. 한국 젊은층들이 통일 비용에 대해 걱정을 많이 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한국에서도 통일 후 통일비용으로 1조∼2조원은 족히 들어갈 것이다. 하지만 돈이 중요한 게 아니다. 바로 함께 잘 사는 것이 우선돼야 한다.”

-남북은 60년 넘게 다른 체제 속에서 생활했다. 이질감을 완화시킬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공무원과 전문가들을 북한에 보낼 때 준비를 잘 시켜야 한다. 북한 사람들이 어떻게 그 체제에서 살았는지 정확한 이해가 필요하다. ‘계획경제 속에 살았기 때문에 게으를 것이다. 새로운 것을 창조하려는 정신이 없을 것이다’와 같은 선입견을 절대로 가져서는 안 된다. 인내심을 가지고 배우고 공부해야 한다. 그리고 북한이 남한의 체제를 배울 수 있는 배려가 필요하다. 예를 들어 북한에 은행을 설립하면 은행장은 남한 사람, 부행장은 북한 사람을 임명하는 등 주요 기업이나 관공서 직위에 남북한 사람을 섞어서 임명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지금부터라도 북한이탈주민(탈북자)들과 대화를 많이 하고 그들의 인생을 기록해야 한다. 통일이 되면 이런 일들을 전국적으로 해야 한다. 북한 주민이 어떻게 살았는지, 무엇을 바라는지 알 수 있기 위한 것이다. 그러면서 대화를 많이 해야 한다.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선 대화보다 더 나은 교량은 없다. 서로를 알아야 한다.”

베를린=글·사진 모규엽 기자 hirte@kmib.co.kr

■ 자문해주신 분들

△김재신 주독일대사 △리아나 가이데치스 독일환경자연보전연맹(분트) 그뤼네스 반트 센터장 △베르너 페니히 독일 베를린자유대 명예교수 △신은숙 민주평통 통일정책자문국장 △악셀 슈미트 괴델리츠 독일 동서포럼 이사장 △알렉산드라 힐데브란트 체크포인트 찰리 박물관장 △양창석 전 통일부 남북회담본부장 △염돈재 성균관대 국가전략대학원장 △우베 리켄 독일 자연보전청 경관생태국장 △이봉기 주독일대사관 통일관 △크리스토프 보네베르거 전 라이프치히 성니콜라이 교회 목사 △한나 베르거 베를린 장벽박물관 홍보담당관 △최월아 민주평통 북부유럽협의회장 △한스 모드로 전 동독 총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