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웅 목사의 시편] 영적 감정 계좌
입력 2013-11-17 16:56
타인의 잘못을 지적하기 전에 먼저 일곱 번 칭찬하라고 한다. 그렇지 않으면 상대방은 그 지적을 받을 수가 없으며, 결국 그 지적이 역효과가 날 가능성이 많다는 이야기다. 일곱 번의 칭찬을 통해 튼튼한 신뢰와 사랑의 방어벽이 만들어지면, 어떤 지적과 비판도 견딜 수 있게 된다. 반대로 내가 만일 타인의 비난과 조소를 넉넉하게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마찬가지다. 스스로 두터운 감정의 방어벽을 준비하면 된다. 내가 하나님께 받은 사랑과 은혜를 기억하면서 부요한 마음을 준비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자극이 와도 내 성질대로 반응하지 않도록, 자극과 반응 사이에 두터운 사랑의 쿠션을 집어넣는 것이다. 하나님께 받은 부요한 사랑이 마치 유사시의 자동차 에어백가 같은 역할을 하도록 하는 것이다.
스티븐 코비의 ‘원칙중심의 리더십’에 보면 이와 비슷한 설명이 나온다. 일명 ‘감정계좌’의 비유다. 사람과의 관계에 있어서 평소 서로를 향한 신뢰와 사랑을 두터워지게 하는 말과 행동은, 마치 은행계좌에 잔고를 채워 놓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랑과 신뢰의 말과 행동을 평소 많이 하라는 것이다. 이 잔고가 넉넉할 때 서로의 관계는 문제가 없게 되고, 어떤 비판에도 서로의 관계는 영향을 받지 않게 된다고 한다. 그러나 잔고가 부족하여 바닥이 났을 때, 어떤 지적도 더 이상 감당이 되지 않고, 오히려 관계는 힘들게 될 뿐이다. 만약 부부 사이라고 한다면 서로의 감정계좌가 바닥이 날 때, 이혼의 위기에 이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평소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발전시키는 것이 왜 중요한가? 그것은 하나님과 나 사이의 감정계좌가 넉넉하여 넘치게 만드는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의 어떤 지적도, 어떤 고난의 훈련도, 오해 없이 통과하며 받아들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어떤 비난과 질시도 감당할 수 있다. 예수님의 발에 향유를 부은 여인을 보라. 향유를 가지고 나타난 이 여인은 과거가 부끄러운 여인이다. 그러기에 수많은 사람들이 이 여인을 향해 따가운 눈총을 보내고 있다. 그러나 그러한 눈총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오로지 향유를 붓고자하는 열망에 사로잡힌 이 여인을 보라. 하나님과의 영적인 감정계좌가 얼마나 넉넉한 여인인가?
초대교회 당시 한 주인이 종의 밀고로 붙잡혔다. 심문을 받은 후 주인은 결국 순교장으로 끌려가는데, 자신을 밀고한 종과 눈이 마주쳤다. 주인은 종을 가까이 오라고 한 후에 말했다. “고맙네. 나를 순교할 수 있도록 해 주어서!” 그리고는 자신의 재산의 소유권을 의미하는 반지를 꺼내서 그 종의 존에 끼워주었다. 그리고 그는 순교했다. 이 이야기가 내 마음을 쳤다. 도대체 하나님과의 영적인 감정계좌가 얼마나 넉넉한 사람인가. 넉넉하다 못해 흘러넘치고 있는 사람이 아닌가. 유사시에 사용될 영적 에어백이 얼마나 튼튼한 사람인가. 감사절을 지내며 우리의 영적계좌의 잔고를 확인할 필요가 있겠다. 나의 영적 에어백은 두텁고 안전한가?
<서울 내수동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