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을 넘어 미래한국으로] 동독 붕괴 도화선 된 1989년 2개 사건
입력 2013-11-17 17:18 수정 2013-11-17 17:19
동독 붕괴와 독일 통일을 앞당긴 직접적인 주요 원인은 1989년 시작된 동독 주민들의 대규모 탈출(사진)이었다. 그해 유럽과 중국에서 벌어진 2개의 사건은 동독 주민 탈출의 도화선이었다.
하나는 1989년 5월 오스트리아와의 국경 지역에 설치된 장벽을 철거한 헝가리 정부의 결정이었다. 당시 민주화 개혁을 추진하던 헝가리 정부는 국경을 허물고 자국 시민들의 오스트리아 자유 통행을 허용했다. 당시 이 장면은 TV로 중계됐고 이를 지켜보던 동독 주민들 사이에선 헝가리를 통해 서독으로 탈출할 수 있다는 소문이 펴졌다.
당시 동독에선 부정선거 파문에 항의하는 시위가 여행 자유와 언론 자유를 요구하는 목소리로 확대됐다. 이어 동독 주민들이 헝가리로 탈출하기 시작했다. 헝가리 정부가 이들을 동독으로 강제 송환하지 않고 오스트리아 국경으로 넘어가는 것을 묵인하면서 탈출 행렬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다. 그해 9월까지 헝가리와 오스트리아를 거쳐 서독으로 탈출한 동독 주민은 3만여명이었지만 연말에는 35만명까지 불어났다. 특히 탈출 주민들은 의사, 운전사, 기술인력이 대부분이어서 그 파급효과는 더욱 컸다. 문을 닫는 병원, 상점이 늘고 버스 운행도 중단되자 주민들의 심리가 크게 동요한 것이다.
같은 해 5월 중국 정부의 천안문 시위 무력 진압도 동독 주민들의 탈출을 부추겼다. 양창석 전 통일부 남북회담본부장은 17일 “당시 이 장면은 1953년 동베를린 주민들의 시위를 무력으로 진압한 소련군을 연상시켜 탈출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는 주민들이 크게 증가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에리히 호네커 동독 정권은 주민 탈출이 자신들 체제에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하고 개혁·개방을 지속적으로 거부했다. 이는 결과적으로 커다란 오판이었다. 동독 정부는 뒤늦게 헝가리에는 동독 주민의 즉각 송환, 서독에 대해선 동유럽 국가 주재 서독 재외공관 폐쇄를 요구했지만 대세를 거스르지는 못했다. 결국 동독은 호네커에게 모든 권력이 집중된 탓에 주민 동요와 탈출에 대한 대책을 제대로 마련하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해 8월 호네커의 건강이 악화돼 제대로 집무를 하지 못하면서 동독 정부는 대규모 탈출 사태를 바라만 봐야 했고, 이는 결국 동독의 붕괴로 이어졌다.
남혁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