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빙 알바’의 지존, 이 남자가 사는 법…‘스타 알바’ 27세 이효찬씨
입력 2013-11-15 18:12 수정 2013-11-15 23:29
그는 ‘알바’를 하지만 받는 대우는 ‘스타’급이다. 족발집 서빙 6개월 만에 사장님은 다른 식당에 빼앗기기 싫어서 그에게 1000만원짜리 호텔 피트니스 연간 회원권을 사줬다. 대기업에서 월급의 2배를 제안하며 스카우트하려 했지만 그는 거절하고 계속 식당일을 하고 있다. ‘매니저’ 시켜줄 테니 오라는 음식점 사장들의 제의는 다 셀 수도 없다.
서빙 알바가 이렇게 대접받는 이유는 뭘까. “인생은 아르바이트가 아니다”라고 말하는 ‘스타 알바’ 이효찬(27)씨를 13일 그가 일하는 서울 논현동 조개찜 식당에서 만났다.
이씨는 고교 졸업 후 군대에 다녀와 스물두 살에 알바를 시작했다. 음악을 하기 위해서였는데 어쨌든 직업이 알바였다. 2011년엔 워킹홀리데이로 호주에 알바를 하러 갔다. 돌아와서 지난해 1월 시작한 알바가 서울시청 부근의 유명 족발집 서빙이다. 이 족발집 사장님이 그에게 호텔 피트니스 회원권을 선물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이씨는 번호표 받고 기다리는 손님들이 심심하지 않도록 신청곡을 받아 틀었다. 아무도 시키지 않은 일이다. 손님이 데려온 아이들의 장기자랑 무대를 만들고 레크리에이션 진행도 했다. 그래서 팁을 받으면 카운터에 넣거나 종업원들에게 음료수를 돌렸다.
하루 한두 개도 안 팔리던 ‘비인기 메뉴’를 위해 기발한 멘트를 만들어냈다. 식당에 들어서는 손님들을 향해 “오늘 하루 고생했다면 자신에게 선물하세요. 비빔국수가 한 그릇에 5000원입니다”라고 외치는 식이다. 이후 비빔국수 하루 매출은 50만원으로 늘었다.
이씨는 “고객이 불러서 가면 심부름이지만 내가 찾아가면 서비스가 된다”고 말한다. 족발집에서 일하며 한 달에 한 번씩 새 신발을 사야했다. 남보다 몇 배 많이 움직이니 한 달이면 신발 옆에 구멍이 나기 일쑤였다. 컨디션이 너무 안 좋은 날은 아예 휴가를 냈다. 그는 “웃으며 대할 자신이 없는 날엔 휴가를 냈는데 1년6개월간 딱 두 번이었다”고 했다.
“서빙은 손님을 관찰하는 데서 시작됩니다. 관찰하다 보면 뭐가 필요한지 쉽게 알 수 있어요.” 테이블의 물병에 물이 떨어지기 무섭게 그는 새 물병을 내놓는다. 그것도 그냥 건네는 법이 없다. “1급 청정수 왔습니다”라거나 “깨끗한 정수기 대령이요” 같은 멘트를 함께 건넸다.
이렇게 능청스런 사람을 모두가 좋아하는 건 아니다. 손님에게 “서빙이나 똑바로 하라”는 면박을 당한 적이 있다. “네 알겠습니다” 한 뒤 식당 밖에서 한참 서 있었다고 한다. 그러곤 양손에 음료수를 들고 그 손님에게 다시 갔다. 더 신경 써 챙겼더니 “아까 미안했다”는 사과가 돌아왔다.
이런 그를 눈여겨 본 사람이 많았다. 대기업 보험사 임원은 식당에 찾아와 “지금 월급의 2배를 줄 테니 같이 일하자”고 제안했다. 대형 프랜차이즈 음식점에선 숱하게 왔고, 어느 교육기관에선 강연을 요청했다. ‘아르바이트 인생은 없다’란 주제의 3차례 강연 요지는 “알바하는 시간도 인생의 중요한 순간이니 늘 충실하자”였다.
이씨는 1년6개월 만에 시청 앞 족발집을 떠나 지금은 논현동 조개찜집에서 일하고 있다. 스물두 살에 처음 알바를 시작했던 작은 식당이다. 그는 “알바하는 나에게 일하는 자세를 가르쳐준 인생의 멘토가 바로 여기 사장님”이라고 했다.
이씨는 이곳에서 매일 오후 5시부터 다음날 오전 6시까지 일한다. 집에 들어가도 바로 잠자리에 들지 않는다. 그날의 경험을 글로 남겨두고 있다. ‘족발집 서빙 교본’ 같은 제목이 붙은 글들은 혹시 나중에 책이 될지도 모른다.
부모님이 모두 정신지체 3급 장애인이어서 원래 내성적이었다. ‘스타 알바’가 된 건 전부 노력의 결과다. 이씨는 “대한민국에서 서빙하는 사람 중에 가장 유명한 스타가 되고 싶다”고 말한다. 그는 “‘좋습니다’ ‘자신 있습니다’ ‘제가 하겠습니다’ 세 마디로 무장하고 일하는 시간을 즐겼다”고 했다.
박요진 기자 tru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