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콩고의 ‘작은 기적’] “지붕이 있는 교실이 생겼어요” 신나서 ‘팔짝’ 희망도 ‘활짝’

입력 2013-11-16 04:59


콩고민주공화국(DR콩고) 리카시 지역의 누루초등학교 물룬다(11)는 한 달에 서너 번은 학교에 가지 않았다. 흙으로 덧발라 지은 학교는 책상도, 의자도 없었다. 흙바닥에 앉아 무릎에 책을 펴놓고 수업을 들었다. 열악한 환경에서 공부가 재미있다고 느낀 적이 한번도 없다고 했다.

물룬다는 “비가 오는 날이 좋았다. 비가 오면 선생님이 수업을 끝내고 일찍 집으로 돌려보내줬다”고 말했다. 학교에 지붕이 없어 비가 오면 쫄딱 젖기 때문이다. 물룬다에겐 형, 동생과 뛰놀며 하루하루를 생각 없이 보내는 일상이 익숙했다.

그랬던 물룬다가 꿈을 갖게 된 건 지난해 제대로 된 학교 건물이 생긴 뒤부터다. 이제는 책을 무릎 대신 짝꿍과 함께 앉는 나무 책상에 올려놓는다. 또박또박 필기도 할 수 있다. 물룬다는 “공부를 열심히 해서 가난한 DR콩고를 위해 일하는 사람이 되겠다”며 “기술자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삼성전자 DS부문 사회봉사단과 국제구호단체 월드비전이 지난달 30일 이 학교를 찾았다. 지난해 이들이 직접 쌓아올린 학교 건물에서 400여명 오후반 학생들은 두 눈을 반짝이며 수업을 듣고 있었다. 흙먼지가 잔뜩 묻어 있곤 했던 교복이 깨끗하다. 학교 관계자는 “매일 바닥에 털썩 앉아 수업을 듣다가 이젠 깨끗한 책걸상에서 공부하니 학부모들이 교복 세탁에 더 신경을 쓴다”며 웃었다.

건물 하나가 가져온 변화는 컸다. 이 학교의 올해 중학교 진학률은 무려 90%. 다른 지역의 진학률이 50%를 밑도는 점을 감안하면 기적에 가깝다. 학생들은 집에 돌아가면 들여다보지 않던 책도 꺼내든다고 했다. 이 학교 학생 방가(12)는 “누루초등학교에 다니는 것이 자랑스럽다”며 “의사가 돼서 사람들이 건강하게 살 수 있도록 돕고 싶다”고 말했다.

한국이 선사한 DR콩고의 기적은 학교만이 아니었다. 키순카 지역에 올 초 들어선 보건소는 마을 사람들에게 큰 버팀목이 됐다. 식수가 오염돼 콜레라에 걸리거나 면역력이 떨어져 말라리아를 달고 사는 이곳 사람들에게 수십㎞를 걸어 보건소에 간다는 건 꿈도 못 꿀 일이었다. 한국 기업 본죽의 사회공헌재단 ‘본사랑’은 월드비전 후원을 통해 보건소를 지어 주민들에게 선물했다.

루스(32·여)씨는 일주일 전 이 보건소에서 딸을 얻었다. 6번째 아이인데 제대로 된 의료시설에서 안전하게 입원했다가 출산하기는 처음이었다. 다섯 번째 아이를 낳을 때는 30여명이 종잇장처럼 몸을 구겨 넣은 승합차를 타고 3시간을 달려가야 의사를 만날 수 있었다.

이 보건소에선 하루에 한 명꼴로 새 생명이 태어난다. 루스씨는 “마을 보건소를 지어준 한국 사람들을 보니 신기하고 감사하다”며 “태어난 아기도 의사가 돼서 아픈 사람들을 고쳐줬으면 좋겠다”며 웃었다. 지난해에 이어 DR콩고를 다시 찾았다는 삼성전자 사회봉사단 정세헌 부장은 “1년 새 우리의 나눔으로 세워진 학교와 보건소 등 달라진 모습을 보니 보람이 크다”며 “주민들의 눈빛에서 이 나라의 발전 가능성을 읽었다”고 말했다.

DR콩고는 소말리아와 함께 아프리카 최대 위험지역으로 분류된다. 8개 국가에 둘러싸여 있어 전쟁이 끊이지 않는다. 지금도 동부지역은 반군이 점령해 정부군과 분쟁 중이다. 한때 아프리카에서 경제 수준이 가장 높던 DR콩고는 독재정권이 이어지고 내전이 반복되면서 수년 전부터 ‘최빈국’으로 전락했다.

하지만 동시에 ‘기회의 땅’이기도 하다. 아프리카 대륙의 정중앙에 위치해 ‘아프리카의 심장’이라 불린다. 휴대전화 제조의 핵심 원료인 콜탄, 코발트, 구리 등 지하자원이 풍부하다. 이런 자원의 가치를 다 합하면 미국과 유럽연합(EU)의 GDP(국내총생산)를 더한 것보다 많다고 한다.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DR콩고에서 삼성전자와 월드비전은 수년 전부터 교육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올해는 또 다른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지난달 30일 리카시 키쿨라 지역의 무왕가초등학교에 교내 IT센터인 ‘시베르 카페’(cyber cafe의 프랑스어 발음)를 만들었다. IT 기술로 학생과 주민들의 정보 수준을 끌어올리자는 생각에서다. 컴퓨터 20여대가 설치된 작은 공간이지만 학생들은 이곳에서 인터넷을 통해 세계와 소통할 수 있게 됐다.

지난달 30일 열린 IT센터 개소식에는 1000여명 학생과 주민들이 모여 축제를 열었다. 학생들은 박수 두 번을 친 뒤 발을 구르면서 개소식에 참석한 삼성 봉사단과 월드비전 관계자들을 향해 ‘환영의 노래’를 불렀다. 운동장을 가득 메운 학생들 머리 위로 만국기가 펄럭였다. 리카시 시장도 행사장을 찾아 “학생들에게 새로운 배움의 공간을 만들어 준 한국에 감사하다”며 “지역 주민과 학생들이 DR콩고의 발전에 기여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삼성전자 사원 대표로 참석한 백선욱(32)씨는 “50년 전 한국은 DR콩고보다 더 가난했다. 한국은 꿈을 꾸었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모두가 열심히 일했다”며 “여러분에게도 꿈을 이룰 기회가 있고, 자신감을 갖고 공부하면 그 기회를 잡을 수 있다”고 격려했다. 삼성전자 김병철 DR콩고 지점장은 “빈부 격차는 정보 격차에서 시작된다”며 “학생들이 이 센터에서 인터넷으로 세계와 만나 새로운 꿈을 가꿔가길 바란다”고 말했다.

리카시=글·사진 김유나 기자 spri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