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화 칼럼] 스스로 돕도록 돕자

입력 2013-11-15 16:58


아이티 지진 때 한국교회는 진력을 다해 도움의 손길을 베풀었다. 외교적으로나 문화·역사적으로 별로 친밀한 관계가 없는 나라였다. 고작해야 우리 교회가 그곳에 선교사를 일부 파송하고 기도로 함께하는 정도였다. 그런데 알지 못하는 이웃이 어려움에 처할 때 기꺼이 도움의 손길을 베푸는 것이야말로 예수께서 칭찬하시던 사랑의 봉사자인 선한 사마리아 사람을 닮은 선행이었다고 믿는다. 그래서 우리의 사랑의 도움은 훨씬 빛난다고 본다. 물론 자랑을 하고파 하는 말은 아니다. 도움의 손길을 통해 우리나라와 우리 교회는 아이티와 아주 가까운 이웃이 되었음을 감사한다.

필자는 1970년대 독일교회에서 순회목회를 담당하는 에큐메니컬 선교 동역자로 봉직하면서 주일이면 정해진 순차에 따라 독일인 교회를 방문하고 설교하며 예배순서를 전부 진행하는 임무를 맡았었다. 물론 ‘알리는 말씀’만은 그곳 교회 담임목사의 일감이었지만 말이다. 일단 독일목사 자격을 인정받은 이상 똑같은 목사 가운을 입고 정해진 예배순서에 따라 예배인도를 하지만 외국인 목사에게도 예배진행 전권을 위임하는 개방성에 늘 감사하곤 했다. 지금 돌이켜보니 6년간의 공식 봉직기간 중에 이렇게 방문한 교회가 350곳을 넘어선 것을 후에 정리하며 알게 되었다. 다양한 교회들의 다양한 모습이 지금도 큰 기쁨의 원천으로 남아 있다.

그런데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본래 독일교회는 교인으로 등록하면 세무서에서 소득세액의 약 8∼10%를 추가 세금으로 거둬간다. 세율은 주세법에 따라 다르다. 허나 이 추가 세금은 소위 ‘종교세’라 하여 등록된 교인은 예배 출석과는 상관없이 자동적으로 떼어간다. 세금내기 싫으면 세무서에 신고하면 된다. 세무서는 이 신고에 따라 등록된 해당 교회에 입교 및 탈퇴 여부를 통고한다. 이것이 가장 정확한 교회의 교인교적정리이다. 예를 들어 탈퇴자는 자식의 학교 종교교육 과목 참여, 교회 결혼예식, 당사자 가족의 교회 장례예식의 혜택에서 제외된다. 종교세금은 3분의 1은 세무서의 수공비로, 3분의 1은 총회본부에 주어 전교역자 인건비 및 경상재원으로, 나머지 3분의 1은 해당 개교회의 경상예산으로 지급된다. 그래서 매주일 드리는 헌금은 항상 특별 목적 헌금이 된다. 주로 동전이 많이 나온다. 그런데 한국인 설교자가 가면 사전 협의는 하지만 ‘한국을 위한 헌금’으로 공지된다. 동전에 익숙한 일반 헌금과 달리 거의 ‘지폐 헌금’이 쏟아져 나온다. 필자의 기억으로는 거반 다 그랬다. 정말로 정성이 담긴 헌금이었다.

사실 70∼80년대 한국 교회와 사회가 어려웠을 때 이런 헌금은 우리에게 거대한 격려요 위로의 힘이었다. 그런데 헌금관행 질문에 대한 답은 거의 똑같았다. “낯모르는 사람에게는 더 정성된 헌금을 바치라”는 오래된 가르침에 기꺼이 응한단다. 그것이 예수님의 디아코니아 정신이라면서. 그때마다 필자는 고맙다고 겉으로 웃고 속으로는 부끄럽고 미안해서 울었다. 이름내며 아는 곳에 지폐가 있고, 모르는 곳에 동전이 몰리는 한국교회의 현실을 알기 때문이다.

필리핀의 레이테주를 강타한 태풍 하이옌의 풍마에 타클로반을 위시한 도심지역이 아수라장이 됐다. 1만여명이 사망하고 이재민은 셀 수 없이 많고, 20만명의 도시가 아예 아비규환의 모습으로 변했다는 말 속에 피해의 참상이 고스란히 표출돼 있다. 필리핀은 잘 모르는 이웃이 아니다. 우리나라가 6·25전쟁의 와중에서 아수라장이 되었을 때 7420명의 육군을 파병해줬다. 남의 땅에서 112명이 전사하고 57명이 실종됐으며 299명이 부상을 입었단다. 왜? 우리 불쌍한 한국 국민을 위한 사랑과 헌신 때문에. 그리고 지금의 우리나라에 1만5000여명의 필리핀 여성이 한국으로 시집와 다문화 가족의 큰 줄기를 형성하고 있다. 외교와 문화 교류에 있어서 필리핀은 항상 우리나라와 어깨를 같이해왔다. 고맙고 감사하다. 한국은 어려울 때 필리핀으로부터 큰 도움을 받아 지금은 필리핀을 도울 수 있는 작지만 어엿한 부자나라, 자립한 나라로 성장했다. 우리가 ‘스스로 도울 수 있도록 도와준’ 필리핀이 고맙다. 우리도 이제 다시 팔을 걷고 필리핀으로 하여금 ‘스스로 도와 선진부국이 될 수 있도록’ 아름다운 도움을 펼치자. 은혜는 반드시 보답해야 한다. ‘동전’이 아니라 ‘지폐’로 돕자. 동전의 마음을 넘어 지폐의 가슴으로 돕자.

(경동교회 담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