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왕재 박사의 성서 건강학] 식욕의 계절
입력 2013-11-15 16:59
가을은 분명 활동하기에 좋은 계절, 그래서 입맛이 많이 당기는 계절이다. 밥맛이 좋다는 이야기는 몸이 정상임을 의미한다. 즉, 소화관의 건강이 좋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소화기 전문의사들의 말을 빌리면 가장 많이 외래를 찾는 내과 환자가 소화기 환자란다. 특히 한국인은 맵고 짠 음식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위염이나 위궤양 등 위장 질환이 없는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라 하니 식욕의 계절에 위장 건강에 대해 살펴보자.
위장은 밥통의 기능이 가장 근원적 기능이다. 즉, 짧은 시간 내에 먹고 의미 있는 일에 다른 시간을 쓰라는 의미일 것이다. 그런데 잠시 음식을 저장하는 위장은 음식을 저장만 하는 것이 아니고 일부 소화 활동과 본격적 소화를 위한 준비작업을 한다. 그중 하나가 독한 산을 분비하는 일이다. 염산이라는 강산이 분비되어 질긴 음식을 연화시키고, 한편 미처 소독되지 못한 음식을 소독하는 역할도 해준다. 보통 음식이 위장에서 2∼3시간 머무르는데 그 사이 분절운동과 연동운동에 의해 음식물은 섞이고 잘게 쪼개지는 일을 반복해 결국은 죽과 같은 상태가 되어서 소장으로 넘어가 본격적인 소화가 이루어진다.
위장의 기능 중 염산 분비는 조물주에 의한 생명 창조의 신비라 할 수 있다. 독극물로 분류된 그 강산을 어떻게 우리 몸에서 아무런 손상 없이 만드는 것일까. 아직 분명하게 밝혀져 있지 못한 장치를 통해 우리 몸에 독성을 나타내지 않고 중요한 기능을 발휘하기만 하지만 그 질서가 무너진 환자를 보면 염산의 위력을 실감한다.
즉, 위궤양은 위장으로 분비된 염산에 대한 보호벽으로 알려진 점액층이 파괴되어 그 독성을 정상 조직에 발휘하여 궤양이 생기는데 심한 경우 위장에 구멍이 나서 급성 복막염이 되어 응급 수술을 요하기도 한다. 적당량의 염산이 필요한 것은 확실한데 우리의 무질서한 삶 가운데 이 독한 실체의 기능을 보장해주지 않을 때 우리는 궤양이라는 무서운 현실과 조우하게 된다.
위궤양의 원인은 많이 알려져 있지 못하다. 그래서 위궤양 치료의 많은 경우 제산제가 사용되는데 왜 염산이 과다하게 나오는지를 모르는 대증요법임을 알 수 있다. 다만 과음 후 두통을 해결하기 위해 공복에 복용한 아스피린 계통의 진통제는 확실한 위궤양의 원인으로 알려져 있다. 지나친 음주 자체도 위장 질서를 파괴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보호막인 점액층을 파괴하는 것으로 알려진 아스피린 계통의 진통제 복용이야말로 확실한 위궤양의 원인이라 할 수 있다. 또 다른 흔한 위장 질환의 하나인 위염은 50세가 넘은 경우 거의 모든 사람에게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존재한다고 전문가들은 이야기한다. 우리가 삶을 위해서든 기호를 위해서든 섭취하는 음식 속에 우리도 모르게 위장을 공격하는 물질이 생기거나 존재함을 의미한다.
위장 질환에 음주가 제일 많이 거론되는 공격 인자임은 너무나 잘 안다. 여러 물질이 의심되지만 특히 위장 속 음식들이 섞이는 과정 중에 발생할 수밖에 없는 것으로 알려진 나이트로자민이라는 잠재적 발암물질도 위염의 원인이라 할 수 있다. 다행스럽게 식사와 함께 비타민C를 적정량 복용한다면 그 발생이 억제된다고 하고 실제 비타민C를 오래 복용한 많은 분들이 위장이 좋아졌다고 이야기 하는 것을 보면 위장 건강에 비타민C가 도움이 되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결국 위장 건강은 규칙적인 건전한 생활을 통해 지켜질 수 있음을 알려주고 있다. 하나 덧붙인다면 입맛의 계절, 역설적으로 위장 건강의 중요성을 새삼 깨달아 그간 잊고 살아 온 위장 내시경을 한번쯤 받을 수 있다면 현대를 사는 지혜로운 자의 반열에 들 수 있지 않을까?
<서울대 의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