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이경원] 집에 대하여

입력 2013-11-15 18:03


한동안 살던 서울 신림동 전셋집의 전세금을 돌려받지 못해 전세금 반환청구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전세금을 올려달라고 할까봐 집주인 아주머니가 보이면 멀찍이 돌아가면서, 스스로는 꽤나 약삭빠르게 사는 줄 알았다. “한 달 안에 전세금을 내 주겠다”는 말만 믿고 이사를 갔고, 정작 등기부등본 한 장 떼어볼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근저당, 가압류, 건물 매매, 집주인 변경…. 뒤늦게 본 등기부등본에 낱낱이 적힌 내 옛 집주소의 온갖 역사가 생경했다. “네가 도대체 어떻게 사람들의 집에 대해서 신문기사를 쓴단 말이냐.” 부모님께서는 한 마디만 하셨다.

지금은 일과 중에도 몇 번이나 한숨을 쉬게 하는 골칫덩이지만, 돌이켜보면 신림동 전셋집은 좋은 추억이 많은 공간이었다. 군에서 전역하고 복학을 준비하던 시절 그 방을 발견했다. 가파른 언덕 위에 있었지만 널찍하고 깨끗했다. 학교와 공원, 헌책방이 모두 가까웠고, 앞으로는 도림천이 흐르는데 뒤에는 관악산이 있어 이것이 배산임수(背山臨水)로구나 혼자 무릎을 쳤다. 무엇보다도 드물다는 전세였다. 방을 계약할 때 집주인 아주머니는 “이 방에 살던 학생 중 하나는 고시에 합격해 나갔고, 직전에 살던 학생은 경찰공무원이 돼 결혼도 했다”고 기묘한 덕담을 건넸다. 전 주인이 미처 치우지 못하고 간 책상 서랍 안에서는 ‘먹고 사는 건 구더기도 한다’는 낙서가 나왔다. 그 청춘의 절박함이 괜히 마음에 들어 일부러 버리지 않았다.

살다 보니 여름에는 시원했고 겨울에는 따뜻했다. 햇빛이 충분히 들어 방 안에서도 빨래가 잘 말랐다. 여공(女工)이 치열하게 살아낸 누추한 삶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20대의 꿈을 키운 그 방은 내게는 신경숙의 외딴방보다 애틋했다. 객기가 필요할 때면 친구들을 불러 술도 많이 마셨다. 신문기자로 취직했을 때에는 집주인 아주머니의 이야기를 떠올리며 ‘이 방의 서기(瑞氣)는 이어간 셈인가’하고 들뜨기도 했다. 흉한 사건이 종종 있던 신림동이다 보니 해프닝도 있었다. 천안함 사건을 취재하느라 집을 비웠을 때 한 달치 신문이 방문 앞에 쌓이자 누군가가 “고시생이 자살한 것 같다”고 신고해 경찰이 다녀갔다. 인사도 안 하는 고독한 인생끼리지만 슬며시 옆방에서 건너온 관심이 내 딴에 고마웠다.

하지만 집에 대하여 가질 자세로 권장되는 것은 이런 값싼 감상이 아니라 차가운 계산일 터였다. 전세금을 돌려받겠다고 보증보험에 가입하고 법원에 공탁금을 내며 억울함에 쩔쩔맬 때마다 많은 이들은 “젊은 사람이 미련하게 전세금이나 떼이고 다니느냐”고 혀를 찼다. 각종 금리를 섭렵해 재테크의 수행에 차질이 없고, 장기적으로는 한강 조망권까지 고민할 줄 아는 똑똑한 젊은이가 아니라서 답답했을 것이다. 아둔함이 부끄러워 경제부 기자라는 말도 못했다. 경락률과 전세가율이 어쩌고, 전세자금 대출의 급증세가 어쩌고…. ‘그동안 박제된 기사만 쓰고 있었나’하며 직업윤리 차원의 문제인지를 심각하게 고민한 적도 있다.

시나브로 집의 언어는 숫자로 이뤄져 가고, 이 흐름을 놓치면 서러워진다는 것을 깨닫고 있다. 이 때의 집은 대개 교환가치다. 집의 기능을 거주 목적이라고 속 편하게 말하는 이들은 줄어들고, ‘어디 사시느냐’는 말에 당혹스러워하는 사람은 많아진다. 초등학생들이 아파트 동호수를 물어 친구의 집 평수를 파악한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부채 감축을 강조하는 사람들은 노인들의 재산목록 1호인 아파트에 대고 스스럼없이 ‘감옥’이라고 말한다. ‘꼬리칸’에 타고 있다며 자책하는 2030세대는 예전처럼 내 집 마련을 하기 어렵다고 눈물짓는다.

집은 저 무수한 동양그룹 부실채권 투자 피해자들의 사연에서도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대기업의 법정관리 사태와 얽혀 있는 이들의 집은 사용가치까지 위협받는 상태다. 그룹은 굳건하다는 말에, 잠깐만 넣어 두면 금리 혜택이 크다는 말에, 티와이석세스가 무엇인지 기업어음이 어떻게 생긴 건지도 모르는 노인들이 집을 걸었다. 만기 직전 동양 사태가 터져 아파트 입주금을 제때 내지 못했다는 하소연도 있다. 온 가족이 거리에 나앉게 됐다는 한 투자 피해자는 “집이 없어 하루하루가 지옥이다. 가족과 일부러 정을 떼고 있다. 갈 때 가더라도 당신에게는 모든 이야기를 털어놓겠다”고 이메일을 보내왔다. 그의 안부가 걱정스럽지만 전화도 이메일도 닿지 않는다.

집에 울고 웃는 사람들이 우스꽝스럽다는 신선 같은 이야기도 있다. 넓고 좋은 집을 향한 일생의 투쟁이 과연 의미가 있느냐는 힐난이다. 실제로 사람들은 직장에 출퇴근하는 것이 아니라 집에 출퇴근하는 것 같다고 말한다. 휴가를 반납하고 야근을 도맡을 때, 정작 가정에는 무단결근과 지각을 반복하는 셈이었다는 누군가의 깨달음도 회자된다. 사교육에 시달리는 아이들이 외려 부모보다 늦게 귀가하고, 온 가족이 모여 식사 한번 하기도 어려운 것이 요즘 여염(閭閻)의 현실이다. 철학자 박이문은 “화롯불 옆에서 깊은 명상에 잠긴 사색가는 상상될 수 있어도, 집 밖을 쏘다니는 사람에게는 깊은 사고를 느낄 수 없다”고 했다. ‘철학이 부족하다’는 세상 곳곳의 비명은, 혹시 더 큰 집을 쌓아올리려고 집 밖을 쏘다닐 수밖에 없는 현대인의 모순 때문일까.

이경원 경제부 기자 neosar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