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의 필리핀] “가장 절실한 건 식량·위생, 발전기”
입력 2013-11-14 22:31 수정 2013-11-15 00:49
외곽 빈민가 르포… 지원 현황
14일 오후 필리핀 레이테주 타클로반 외곽 빈민가. 송하종(41) 한국기아대책 선교사가 준비해 온 방역기에서 요란한 소리와 함께 하얀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아이들은 신기한 듯 방역작업을 지켜봤다.
현지 경찰의 도움을 받아 빈민가 골목으로 접어드니 고약한 냄새가 났다. 주변에는 아직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하는 환자가 도움을 요청하고 있었다. 송 선교사를 비롯해 김화영(51) 강병기(41) 선교사 등은 마닐라에서 36시간을 이동해 이곳 현장에 도착했다. 방역기와 발전기, 비상식량 등을 갖고 오느라 피곤할 법도 했지만 어려움을 겪고 있는 현지인이 우선이었다.
발전기도 가동해 수십 명의 주민에게 전기를 제공했다. 일주일 동안 휴대전화를 사용하지 못해 가족의 안전을 확인하지 못하던 칼리토(32)씨도 그때서야 휴대전화를 충전할 수 있었다.
주민들은 구호팀에게 어디에서 왔느냐고 물었다. 강 선교사는 “대한민국”이라며 “우리가 가난할 때 당신들이 도와줬으니 이번에는 우리가 도와줄 차례”라고 대답했다. 주민들은 연신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생큐(고맙다)’를 연발했다. 강 선교사는 “재해현장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식량과 위생”이라며 “발전기도 필수”라고 설명했다.
타클로반의 또 다른 외곽 중국계 고등학교 체육관 임시대피소. 100여 가구가 대피 중인 이곳에 이진호(50)씨 등 봉사단원들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이들이 준비해 온 것은 쌀과 라면, 비스킷, 설탕 등 비상식량 100인분이었다. 비상식량을 받기 위해 주민들은 길게 줄을 섰다. 사재기가 벌어진 세부에서 이씨는 상인들을 설득해 마련한 비상식량을 갖고 이곳까지 달려왔다.
한국을 포함한 국제사회의 지원이 확대되면서 슈퍼태풍 ‘하이옌’의 최대 피해지역인 타클로반에서 구호가 본격화되고 있다. 특히 타클로반으로 가는 도로가 복구되면서 묶여있던 구호품 보급이 원활해지고 있다.
미국 국제개발처(USAID)는 타클로반 이재민 1만 가구에 위생키트 등을 전달했다. 유엔세계식량계획(WFP)은 이재민 5만명에게 쌀 등 구호물자를 지원했다. 이날 오전 한국에서 출발한 공군 소속 C-130 수송기 2대는 타클로반으로 가려다 현지 사정으로 항로를 틀어 세부에 도착했다. 수송기는 담요와 텐트, 비상식량 등 20t 규모의 지원물품을 전달하고 한국으로 귀환했다. 한국 교민 11명은 오후 10시15분쯤 미군 수송기를 타고 마닐라로 출발했다. 미군이 자리를 내줘 탑승할 수 있었다.
미국은 주말까지 해병대 병력을 기존 300명에서 1000명까지 늘릴 방침이다. 이미 구호활동 중인 수송기 4대 외에도 MC-130 수송기 8대를 추가로 투입, 식량과 식수 등 생필품을 공급키로 했다. 항공모함 조지워싱턴호도 이날 피해 지역 해안에 도착해 항공편, 차량 등을 지원했다. 신형 수직 이착륙기 MV-22 ‘오스프리(Osprey)’와 무인기 등을 동원해 피해 상황을 확인했다.
일본 역시 자위대원 1000명을 필리핀에 보내기로 했다. 해외 긴급구호 활동사상 최대 규모다. 일본 정부가 자위대의 적극적 구호 활동 모습을 부각시켜 자위대의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10만 달러 지원 결정으로 ‘쥐꼬리 원조’ 논란에 휩싸였던 중국은 뒤늦게 지원 규모를 늘렸다. 필리핀 주재 중국대사관은 텐트와 담요 등 160만 달러 상당의 구호물자를 추가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타클로반 시내에는 통행 차량도 늘고 행인도 많아졌다. 길가에는 빗물을 받아 빨래를 하는 여인의 모습도 보였다. 토마토와 돼지고기를 내다 파는 행상의 모습도 눈에 띄었다. 상황실이 차려진 타클로반 시청에는 전 세계 구호단체와 취재진이 뒤엉켜 분주하게 움직였다. 타클로반은 상처를 잊고 일상을 조금씩 회복하고 있다.
타클로반=김지방 기자, 이제훈 이용상 기자 fatty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