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노기술로 모든 것을 창조할 수도 분해할 수도… 원자·분자를 벽돌 쌓듯 물건 만드는 시대 온다”
입력 2013-11-14 18:47 수정 2013-11-14 22:05
나노공학 창시 미래학자 에릭 드렉슬러 박사 인터뷰
대부분 사람들이 스마트폰을 사용할 정도로 IT 기기가 생활속에 스며든 요즘 ‘나노(nano)’라는 단어를 접하는 일은 어렵지 않다. 난쟁이를 뜻하는 고대 그리스어에서 비롯된 나노는 10억분의 1 단위를 나타낸다.
나노공학의 창시자이자 미래학자인 미국의 에릭 드렉슬러(58) 박사는 14일 서울 세종대에서 가진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나노 기술은 이제 간단히 정의하기 힘들 만큼 삶에 맞닿아 있다”고 말문을 뗐다.
나노 기술은 한마디로 분자·원자 크기의 물질을 결합 또는 재배합해 새로운 물질을 만들어내는 기술이다. 드렉슬러 박사는 저서 ‘창조엔진’에서 “기계로 원자·분자를 벽돌처럼 쌓아 우리가 원하는 물건을 만드는 시대가 온다. 이 같은 나노 기술로 모든 것을 창조할 수도, 분해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매사추세츠공대(MIT)에 재학 중이던 1986년 드렉슬러 박사가 처음 나노 기술의 개념을 꺼냈을 당시 과학자들은 “허무맹랑한 이야기”라며 못미더워했다. 하지만 지금 나노 기술은 의학, 광학, 섬유화학 등 많은 분야에서 융합되고 활용된다. 특히 반도체 분야에서는 나노 경쟁이 치열하다. SK하이닉스는 20나노급 D램 개발에 성공했고 삼성전자는 2015년에 14나노급 모바일 AP(휴대전화의 중앙처리장치)를 출시하겠다고 밝혔다. 나노 수치가 줄어들수록 제품은 높은 성능을 낸다.
드렉슬러 박사는 “현재 나노 기술은 예상을 뛰어넘는 수준으로 활용되고 있지만 이 개념을 발표할 때부터 (나는) 다양한 분야에서 응용될 것으로 믿었고, 발전시켜야 한다는 의무감마저 들었다”고 말했다.
나노 기술이 대표적으로 활용되는 반도체 분야에서 한국의 위상은 높다. 이를 주도하고 있는 한국 기업들에 드렉슬러 박사는 당부의 말을 전했다. 그는 “나노 기술 분야의 선구자에게 중요한 역량은 두 가지”라며 “하나는 나노 기술을 활용하는 제조 역량, 다른 하나는 미래를 보고 투자할 수 있는 비전”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한국이 여태껏 보여준 눈부신 발전과 앞으로 보여줄 것들에 대해 존경한다”면서 “한국 사람들과의 기술·과학 분야 협력이 가능하다면 굉장히 반길 것”이라고 말했다.
‘나노공학의 아버지’는 나노 기술의 미래를 어떻게 생각할까. 드렉슬러 박사는 “나노 혁신이 일어나 세계를 좀 더 좋은 방향으로 이끌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는 “의학과 융합해서 질병 치료에 사용되는 것처럼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줄여 지구 온난화를 막는다거나 세계경제 발전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는 기술이 됐으면 한다”는 기대를 밝혔다.
미래로 갈수록 나노 기술의 영향력이 커질 것이라는 확신도 갖고 있었다. 드렉슬러 박사는 “인류는 오래 전부터 달에 갈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수많은 과정이 필요했다”면서 “마찬가지로 우리는 나노 기술도 어떻게 발전시켜야 할지 알고 있다. 아직 과정이 남아 있을 뿐”이라고 단언했다.
임세정 기자 fish81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