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de&deep] 55층 건물 임대율 ‘0’… 불꺼진 ‘동북아 금융허브’

입력 2013-11-14 18:31 수정 2013-11-14 22:11


완공 1년 ‘IFC서울’ 초라한 위상

13일 오후 6시 서울 여의도 서울국제금융센터(IFC서울) 빌딩 지하몰에는 여의도 증권가에서 퇴근한 직장인들로 북적였다. 지하 3층 국숫집 앞은 6시5분쯤부터 사람들이 줄을 길게 섰다. 직장인 박종국(29)씨는 “여의도는 회사만 있고 마땅히 즐길 곳이 없었는데 IFC몰이 생긴 뒤 이곳에 일주일에 두세 번은 들른다”고 말했다.

하지만 지하몰과 연결되는 IFC 3호 빌딩은 유령빌딩 그 자체였다. 지하 1층 ‘갭(GAP)’ 매장에서 IFC 3호 빌딩을 연결하는 에스컬레이터는 가동이 중단됐다. 1층 회전문 입구도, 엘리베이터도 멈춰 있다. 사람 흔적이라곤 1층 안내실 경비원 한 명뿐. 그는 “입주 업체가 없어 모든 편의시설 가동이 중단됐다”고 말했다. 순간 오랫동안 공사가 중단되었던 평양의 유경호텔이 뇌리를 스쳤다. 동북아 금융허브라는 원대한 꿈을 안고 탄생한 IFC서울이 완공된 지 이달로 꼭 1년이 됐지만 좀체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공실률이 50%를 웃도는 데다 해외 금융사 입주 실적이 형편없어 국제금융센터라는 이름이 무색할 뿐이다. 정부가 세수 확보에 총력을 기울이는 만큼 세제 혜택 등이 뒷받침돼야 진정한 IFC서울이 탄생할 것으로 보인다.

◇IFC 빌딩 3호의 임대율 0%, 유령빌딩 방불케 해=IFC서울은 이명박 전 대통령이 서울시장이던 2003년 시작돼 공사비 1조5140억원이 들어간 대규모 프로젝트다. 시는 99년간 토지 임대라는 파격적 혜택을 제공했고, AIG그룹이 투자 및 개발·운영을 총괄했다.

IFC서울은 업무용 빌딩 3개 동과 38층 규모의 콘래드 호텔, 지하 3층짜리 쇼핑몰·식당가로 이뤄져 있다. 업무용 빌딩은 32층 오피스1과 29층 오피스2, 55층 오피스3으로 구성돼 있다. 오피스1이 2011년 11월에, 오피스2와 3이 지난해 11월 문을 열었다.

그러나 시작은 ‘창대’했지만 지금까지 결과는 초라하다. 서울시에 따르면 14일 현재 오피스1만 임대율이 100%를 달성했을 뿐 오피스2는 면적 7만8031㎡ 중 임대율이 52.8%에 그쳤고 오피스3은 아예 0%다.

구체적인 입주현황을 보면 오피스1의 경우 입주업체 31곳 중 외국 금융사는 뉴욕멜론은행, 일본다이와증권 등 9곳에 그쳤다. 오피스2에는 24곳 중 7곳뿐이다. 국내 금융사를 합쳐도 두 빌딩에 입주한 금융사는 25곳에 불과하다. IFC는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자 1년 전부터 ‘월 임대료 6개월 무료’를 내걸고 입주를 받고 있어 가뜩이나 부동산 경기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인근 건물주들이 받는 타격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글로벌 금융위기와 규제완화 미비, 대북 리스크가 원인=상황이 이렇게 된 것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영향이 컸다. 외국 금융사들이 자금조달에 영향을 받으면서 긴축경영에 돌입했기 때문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14일 “금융위기가 터진 뒤 외국 금융사들이 비용절감을 이유로 계약을 취소한 사례가 있었다”고 말했다. 모 외국 금융사는 3개 층을 쓰다가 2개 층으로 사무실을 줄였다. 운영사인 AIG조차 싱가포르에 있는 아시아·태평양 본부를 이곳으로 이전하겠다는 약속을 포기해야 했다.

무엇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우리나라의 취약한 금융경쟁력과 법적 체제 미비다.

금융중심지 입주 업체를 위해 법인세 감면 등을 골자로 한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이 나왔지만 수도권과밀억제권역은 제외되는 바람에 IFC서울은 세제혜택을 받지 못했다. 지난해 초 ‘금융중심지 조성과 발전에 관한 법률’이 발효돼 창업하는 외국 금융사에 현금을 지원토록 했으나 혜택을 본 업체는 아직 제로(0)다. 서울시 관계자는 “외국 금융사들은 여의도 금융중심지에서 창업해야 하고 10명 이상 직원을 채용해야 한다는 조건을 까다롭게 여긴 것 같았다”고 말했다.

올해 초 불거진 북한 리스크도 작용했다. 서재홍 금융위원회 국제협력관은 “남북갈등과 북한의 위협은 동북아 금융허브 유치 경쟁에서 가장 큰 약점”이라고 토로했다. 이창환 서울시 투자유치과 주무관은 “올 초 IFC서울에서 대형 국제회의가 열릴 예정이었지만 북한의 미사일 위협으로 장소가 싱가포르로 바뀌었다”고 말했다. 국내 금융사라도 많이 입주시키려는 AIG 측과 가급적 외국 금융사 위주의 유치를 희망하는 서울시 간 의견 차도 나타났다. KB금융지주는 IFC 빌딩으로 본점 이전을 타진하는 방안에 대해 AIG와 합의했으나 서울시 반대로 무산됐다. KB금융 고위 관계자는 “국내 금융사가 동북아 금융허브의 상징인 오피스3 빌딩에 입주하는 게 적절치 않다는 게 서울시의 반대 이유였다”고 귀띔했다.

◇흔들리는 동북아 금융허브 꿈…박근혜정부의 금융한류는?=IFC서울의 모태는 2003년 12월 참여정부가 의욕적으로 추진한 동북아 금융허브 계획이다. 2015년까지 한국을 ‘동북아 3대 금융허브’로 키우기 위해 2012년까지 세계 50대 자산운용사를 유치하겠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10년이 지난 지금 50대 자산운용사 중 어느 한 곳도 IFC에 들어와 있지 않다. 그나마 한국에 있던 골드만삭스자산운용이 철수했고, ING생명은 한국 사업을 접는 등 외국 금융사 34곳이 한국을 떠났다. 애초 외환시장·자본시장 여건을 볼 때 금융허브 자체가 무리였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현 정부는 동북아 금융허브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정부도 금융허브와 유사한 ‘금융한류’를 내세운다. 하지만 이는 외국 금융사의 유치보다는 우리 금융회사의 해외 진출에 방점이 찍혀 있다. 이는 세수 확보에 비상이 걸린 정부가 외국 금융사에 세제혜택 등 편의를 제공해 줘야 하는 동북아 금융허브와 보조를 맞추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일부에서는 금융의 국제경쟁력 강화라는 목표를 포기할 수는 없는 만큼 정부가 동북아 금융허브의 새로운 틀을 제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고세욱 진삼열 기자 swk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