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아 공동역사서 제안] 獨·佛 함께 쓴 아픈 과거사, 유럽통합 밑거름 됐듯

입력 2013-11-14 18:16

박근혜 대통령이 14일 동북아 공동 역사교과서 발간을 제안하면서 이미 발간된 독일·프랑스 공동 역사교과서에 관심이 모인다. 역사적으로 숙적 관계인 두 나라가 함께 만든 교과서는 상호 역사적 이해의 폭을 넓혀 유럽 통합의 밑거름이 된 것으로 평가된다.

독일·프랑스 공동 역사교과서는 60년이 넘는 양국 간 줄다리기 끝에 2006년 세상에 선을 보였다. 두 나라는 1806년 나폴레옹 1세 프랑스 황제의 독일(당시 프로이센) 침공부터 제2차 세계대전까지 140년간 네 번의 큰 전쟁을 치른 관계다. 가장 최근인 2차 세계대전 때는 독일이 전범국, 프랑스가 피해국이었다.

2차대전 직후부터 독·불 교과서위원회가 꾸려졌지만 논의가 진전되지 않았다. 결정적으로 2003년 소집된 제1차 독·불 청년의회 회의에서 공동 역사교과서 개발안이 채택됐고, 같은 해 양국 정상이 합의해 추진됐다. 즉시 독·불 양국의 역사, 교과서 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공동 연구단이 꾸려졌고, 출판은 독일과 프랑스의 민간 출판사가 공동으로 맡았다.

특히 독일이 과거사에 대해 반성하고 공동 역사교과서 발간에 적극 나서면서 양국 관계도 좋아졌고, 결국 유럽 통합에 기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책에서 민감한 역사적 사실에 대한 서로 다른 관점은 통계, 증언 등 원자료를 그대로 반영하거나 양쪽 견해를 병기하는 방식을 택한 것으로 전해졌다.

독일은 현재 폴란드와도 공동 역사교과서를 집필 중이다. 1972년에 구성된 양국 교과서위원회가 40년이 넘는 작업 끝에 발간을 앞두고 있다.

박 대통령은 동북아 갈등·불신의 근원인 역사 문제의 벽부터 허물자면서 유럽 공동 역사교과서의 사례를 들었다. 퇴행적인 역사의식을 보이는 일본과 동북공정을 추진 중인 중국을 겨냥한 제안으로 해석된다. 일단 대화 분위기부터 조성하자는 취지지만 현실적으로 동북아와 유럽이 처한 상황이 확연히 다르다는 점에서 실현 가능성은 미지수다.

독일이 자신들이 저지른 과거사를 인정하는 상태에서도 유럽은 교과서 발간 협의에만 수십년의 세월을 보냈다. 그러나 우리의 상대국들은 과거사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입장까지 보이고 있다. 심지어 한국사회 내부에서도 이념적 성향이 다른 역사교과서에 대해 적대적인 감정이 극심하다.

독·불 공동 역사교과서도 일부 역사인식에서는 한계를 노출하고 있다는 지적이 있다. 또 양국 관계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각 나라 고유의 역사적 시각이 부족하고, 유럽사 전체에 대해선 소홀했다는 비판도 나온다.

유성열 기자 nukuv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