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기관 파티는 끝났다” 방만경영에 칼 빼든 정부

입력 2013-11-14 18:04 수정 2013-11-14 22:16


“파티는 끝났다.”

현오석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14일 공공기관에 ‘옐로카드’를 꺼내들었다. 막대한 부채로 나라살림의 근간을 위협하면서도 고액 연봉과 성과급 챙기기에 바쁜 공공기관의 도덕적 해이를 강하게 질타했다. 정부는 연말까지 과거 5년간 부채 증가를 주도한 12개 기관의 부채 현황을 자세히 공개하는 등 강도 높은 재무건전성 대책을 추진할 예정이다.

◇현오석, “공공기관의 A에서 Z까지 모두 살필 것”=현 부총리는 이날 서울 명동 은행회관에서 ‘공공기관 조찬간담회’를 주재했다. 과다한 부채와 직원복지로 여론의 도마에 오른 공공기관 수장 20명이 호출됐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한국전력 등 부채 상위 12개 기관을 포함해 인천국제공항공사, 무역보험공사 등 직원들에게 과도한 복지혜택을 주고 있는 8개 기관이 대상이다.

현 부총리는 “상당수 공기업이 수입으로 이자도 내지 못할 정도라는 사실에 참담한 심경”이라며 “기업이 위기의 순간으로 치닫고 있는 현 상황에도 임직원들은 안정된 신분, 높은 보수, 복리후생을 누리며 도덕성과 책임성을 망각하고 있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이어 “민간기업이었다면 감원의 칼바람이 몇 차례 불고 사업 구조조정이 수차례 있었어야 할 것”이라며 “상황이 이런데도 공공기관이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하면서 국민의 불신은 물론 각계의 공분을 사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강하게 꾸짖었다.

공공기관들의 재무상황은 사실상 ‘파산 상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공공기관 경영정보시스템 ‘알리오’에 따르면 지난해 30개 공기업의 금융부채에 따른 이자지급액은 6조7896억원인 반면 영업이익은 6조1451억원에 불과했다. 번 돈으로 부채 이자비용도 내지 못한 것이다. 하지만 공공기관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민주당 이낙연 의원은 지난해 부채 상위 10개 공공기관들이 성과급으로 지급한 돈이 6102억5300만원에 이른다고 지난 9월 밝힌 바 있다. 공공기관 경영평가에서 하위등급(D,E)을 받은 16개 기관은 지난해 접대비로만 45억원을 썼다.

현 부총리는 “과거 5년간 부채증가를 주도했던 LH, 한전 등 12개 기관에 대해 부채규모와 발생원인 등을 연말까지 낱낱이 공개하겠다”며 “정부는 공공기관에 대해 부채, 비리, 임금·성과급, 복리후생, 단체협상, 권한남용 등 A에서 Z까지 모두 살펴보고 반듯한 정상화대책을 내놓겠다”고 강조했다.

◇무디스, “공공부문 부채 급증이 한국경제 걸림돌”=공공기관의 무책임은 국제무대에서 한국의 국가경쟁력을 갉아먹는 요소로 작용한다. 급속하게 늘어나는 공기업 부채는 가계부채와 함께 우리 경제의 가장 큰 위험요인으로 꼽힌다.

톰 번 무디스 부사장은 이날 무디스와 한국신용평가가 서울 여의도 콘래드호텔에서 개최한 ‘제11회 연례 콘퍼런스’에서 “한국의 신용등급에서 가장 큰 도전과제는 공공부문 부채의 급증”이라며 “이 문제가 제대로 관리된다면 한국의 정부신용등급 상향 조정을 제약하는 조건이 완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글로벌 경제위기 이후 빠른 회복력, 수출경쟁력 등 한국의 기초체력은 우수하지만 공공부문 부채가 해결되지 않는 한 추가 등급 상승은 쉽지 않다는 것이다. 기재부 관계자는 “무디스가 지난 8일 한국의 국가신용등급을 Aa3로, 전망을 안정적으로 현행 유지한 것은 공기업 부채와 관련해 정부의 관리 노력을 평가한 것”이라면서도 “다만 잠재적으로는 불안 요인이 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공공기관의 도를 넘은 방만경영에는 정부도 책임질 부분이 있다. 국회예산정책처는 최근 발표한 ‘2014년 공공기관의 정부지원 예산안 평가’ 보고서에서 “연례적으로 결산잉여금(이월금)이 과다하게 발생하는 기관에 대해서는 정부출연금과 보조금을 적정하게 편성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명확한 회계처리 없이 보조금을 지급해 국고가 낭비된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정부 보조사업을 주로 담당하는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코트라)의 경우 별도의 적립금이 필요하지 않은데도 6월말 기준 적립금이 454억원이나 됐다. 예정처는 “기관의 지출비용을 정부예산으로 보전해 주다 보니 기관의 경영개선, 비용 절감 유인이 낮아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세종=백상진 기자 shark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