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년∼대학시절 ‘나’가 오늘의 ‘나’에게 쓴 편지… 장이지 세 번째 시집 ‘라플란드 우체국’
입력 2013-11-14 17:32
당신은 유년의 자신이 보낸 편지를 받으면 어떤 기분일까. 분명 ‘나’였지만 이제는 만날 수 없는 유년의 내가 지금의 나에게 편지를 쓴다. 그 편지에는 무슨 내용이 적혀 있을까.
2000년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한 장이지(37·사진) 시인의 세 번째 시집 ‘라플란드 우체국’(실천문학사)에 실린 ‘우편’ 연작은 과거의 ‘나’가 현재의 ‘나’에게 띄운 편지 형식이 눈에 띈다. 편지는 유년기 시절에서부터 대학시절에 이르기까지 잃어버린 성장서사의 복원에 해당한다. 먼저 사춘기 시절의 ‘나’가 쓴 편지를 읽어본다. “안경잡이의 누나는 매정했고/ 나는 유서를 쓰고 죽는다든지/ 안경잡이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파국의 장면 같은 것을 부질없이 준비했으나// 시간은 늙어서 자연이 되고 쌍둥이 남매를 뒤쫓던 학교 앞 공지 (중략)// 오늘은 내 자신 수취인 없는 개인적 기록으로 앉아/ 빛의 먼지를 뒤집어쓰고 세속 도시를 지우고”(‘우편 4’ 부분)
자세히 보면 이 편지들은 모두 ‘부치지 못한 편지’들이다. 쌍둥이 자매는 분명 실존인물이지만 ‘나’의 고백은 그때나 지금이나 그들에게 전달되지 않는다. 그래서 편지는 우울한 고백이 되고 만다. 발화자만 있을 뿐, 듣는 사람이 없는 그런 고백. 그래서 편지는 수취인 없는 개인적 기록으로 앉아 빛의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는 것이다.
북국의 산타클로스 우체국이 있는 라플란드를 호명하는 시편도 있다. “멀고 먼 라플란드 소읍의 교육청 앞 이발소에서/ 치매에 걸린 할아버지의 손을 잡고 나오는/ 말쑥한 소년을 만난다./ 겉봉에 쓰인 주소가 점점 희미해져가는 편지를/ 이제는 그만,/ 그 소년에게 주어야 하는데….// 우체국을 찾지 못해 어쩔 줄을 모르고.”(‘우편 6’ 부분)
‘나’는 오래도록 보내지 못해 이제는 겉봉에 쓰인 주소마저 점점 희미해지는 편지를 들고 라플란드 우체국을 찾아간다. 세계 각지에서 산타클로스에게 보낸 편지는 모두 이 우체국 소인이 찍힌 뒤 배달되듯 어른이 된 ‘나’ 역시 편지를 쓴다. ‘받는 사람’은 유년의 자신이다. 하지만 ‘나’는 우체국을 찾지 못해 어쩔 줄을 몰라 한다. ‘나’와 ‘나’의 커뮤니케이션은 늘 실패로 끝나고 만다. 시인은 그렇게 우리는 조금씩 사라져가는 ‘나’와 함께 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언젠가 가장 가까운 타인이 바로 자기 자신임을 깨닫고 놀랄지도 모른다.
정철훈 문학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