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서-남도영] 김진태의 길

입력 2013-11-14 17:42


한상대 검찰총장은 권력과 교감했다. 특정 라인이 인사를 장악했다. 주요 사건 처리 결과에는 의혹들이 꼬리를 물었다. 국무총리실의 민간인 불법사찰 의혹, 내곡동 사저 부지 매입 의혹 수사 등은 부실 수사라는 비판을 들었다. 한 총장은 초유의 검란 사태로 물러났다. 권력과 소통한 한 총장에 대한 불만들이 누적된 결과였다.

채동욱 총장은 한 총장과 다른 길을 걸었다. 그는 권력과의 교감을 거부했다. 교감할 기회가 적었다는 말이 더 정확할 수도 있다. 정권 초반 모든 것이 어수선했다. 채 총장은 일선 수사 개입 중단을 천명했고, 검찰의 정치적 중립을 강조했다. 국정원 댓글 사건이 터졌다. 갓 출범한 정권의 정통성을 건드리는 위험한 수사였다. 채 총장은 윤석열 수사팀장의 손을 들어줬다. 혼외아들 의혹이 터졌다. 대통령까지 나서 진실규명을 지시했다. 채 총장은 결국 물러났다.

조영곤 서울중앙지검장과 윤석열 여주지청장의 ‘충돌’이 벌어졌다. 개인 간 충돌이 아니었다. ‘법과 원칙에 따라 국민만 보고 수사하겠다’는 원칙론과 ‘정권과 교감하며 합리적인 결론을 찾아가겠다’는 현실론이 날것 그대로 부닥친 사건이었다.

검찰 내부에는 항상 충돌이 있었다. 김영삼 대통령의 아들 현철씨를 수사할 때도, 김대중 대통령의 아들들을 수사할 때도, 이명박 대통령의 친형인 이상득 의원을 수사할 때도 같은 고민과 충돌이 있었다. 이번에는 그 충돌이 전 국민이 지켜보는 상황에서 공개됐다. 여론은 한상대보다는 채동욱에게, 조영곤보다는 윤석열에게로 기울었다. 원칙론은 선명하다. 패배를 예상하면서도 칼을 들고 전장에 나서는 무사의 이미지, 거악(巨惡)과 맞서 싸우는 검찰의 이미지가 겹쳐졌다.

국정감사장의 조영곤 서울중앙지검장은 힘겨워 보였다. 맹렬히 돌진하는 후배 검사를 막을 수도, 수사팀의 돌진이 탐탁지 않은 정권을 설득하기도 힘들었던 그동안의 번민이 엿보였다. 밤늦은 시각, 조 지검장의 집에서 조 지검장과 윤 지청장이 나눈 술자리 대화에는 그런 고민들이 오갔을 것이다.

한상대 채동욱 조영곤 윤석열 모두 각자의 논리와 번민이 있었다. 현실은 냉정했다. 한상대 총장과 채동욱 총장은 임기를 채우지 못한 채 불명예 퇴진했다. 조 지검장은 사의를 표했고, 윤 지청장은 중징계를 앞두고 있다. 원칙론과 현실론 둘 다 자신의 자리를 지켜내지 못했다.

이제 김진태 후보자의 차례다. 김 후보자는 지난 4월 총장 권한대행 자리를 물러나며 A4지 4장의 글을 남겼다. 기자의 눈을 사로잡은 단어는 ‘홍복(洪福)’, 큰 행복이었다. 그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이나 여지껏 사회적으로 크게 비판을 받고 있는 사건에 관여하지 않은 데 대해 홍복(洪福)으로 생각한다”며 “옹졸한 이기심이라고 비판할지는 모르지만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고 적었다.

안타깝지만, 이제 홍복은 없다. 총장 권한대행 김진태에게는 홍복이 있었지만, 검찰총장 김진태에게는 홍복은 없을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임명장을 받은 김진태 총장 책상 위에는 국정원 댓글 추가 수사 결과 보고서가 놓여 있을 것이다. 전국공무원노동조합과 전국교직원노동조합에 대한 수사 결과 보고서도 놓일 것이다. 김 후보자가 현실과 원칙 사이의 어디쯤에 있을 자신만의 길을 찾을 수 있을까. 유능한 특수검사 김진태와 깐깐한 선배 김진태만으로는 힘들 수도 있다. 김진태 총장의 성공적인 길 찾기를 희망한다.

남도영 사회부 차장 dy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