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김희성] 미안하다, 사랑한다
입력 2013-11-14 17:41
며칠 전, 교회에서 쓸 고무도장을 만들기 위해 산책 겸 집을 나섰다. 목적지는 동네 초등학교 앞에 있는 도장 파는 문방구. 마침 초등학교 하교시간이라 물 만난 물고기떼같이 싱싱하게 펄떡대는 아이들을 뚫고 문방구 안으로 들어섰다. 도장을 맞추고 잠시 구경하고 있는데 한 무리의 여자아이들이 들어왔다. 한 아이가 작은 아크릴 상자를 한 손으로 들고 있었다. 속에서 무언가 움직이는 것이 느껴졌다. 햄스터였다. 상자 속의 햄스터는 바닥에 깔린 종이상자를 뜯어먹고 있었다. 그리고 아이의 조심성 없는 움직임에 따라 폭풍을 만난 조각배처럼 이리저리 부딪히며 요동치고 있었다. 안타까운 마음에 한숨이 나왔다.
아이 마음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작고 귀여운 햄스터가 움직이고 먹고 쌔근쌔근 잠도 자고, 얼마나 신기하고 예뻤겠는가. 오물오물 볼이 미어터지게 씨앗을 먹는 모습은 보고 또 봐도 질리지 않을 것이고 하루 종일 곁에 두고 싶었을 것이다. 또 친구들에게 보여주고 자랑도 하고 싶었을 터, 보쌈하듯 싸들고 학교까지 종종걸음쳤을 것이다. 그런 아이를 탓할 생각은 없다. 그로 인해 햄스터가 괴로워한다는 것을 살피기에는 아직 너무 어린 나이니까 말이다. 게다가 햄스터를 뽑기의 경품으로 주는 어른들도 있다니 아이 앞에서 생명 운운할 염치가 없다. 그러나 그냥 그대로, 생명의 중함도 모르고 나만 좋으면 되는 어른으로 자라서는 안 되지 싶다.
일전에 동물병원에서 본 한 중년 여성이 생각났다. ‘동물의 왕국’에나 나올 법한 손바닥만 한 원숭이를 데려온 그녀는 녀석에게 물려 병이라도 옮을까봐 멀쩡한 이빨을 뽑아버렸다. 그리고 마취가 덜 깨서 늘어져 있는 원숭이를 숨구멍도 없는 봉제가방에 집어넣으며 “엄마가 미안해, 사랑해”라고 한다. 소름끼치도록 무지하고 위험한 사랑이었다.
무언가를,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다. 상대를 알기 위해 노력하고 이해하고 배려하는 것, 나를 좋게 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를 좋게 해주는 것, 그래서 때론 바라만 봐야 하는 가질 수 없는 것. 그것이 바로 좋아한다는 것이다. 동물사랑도 마찬가지다. 좋아하는 마음만 차고 넘쳐 마음 가는 대로 생각 없이 행동했다가는 서로에게 상처가 될 뿐이다. 그러니 동물사랑의 교육적 효과를 따지기 전에, 아이의 정서를 위한다고 아이의 욕구와 타협하기 전에, 좋아한다는 것의 무게를 가르쳐주는 것이 먼저다. 그것이 진짜 아이를 위한 교육이고 어른들이 할 일이다.
김희성(일본어 통역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