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땀 흘려 모은 내 돈 어디로 갔나” 동양 채권 피해자 이순자씨 ‘승용차 노숙’하며 사태 해결 촉구
입력 2013-11-14 17:26
17일째 상경 시위 ‘파랑새’의 절규
“파랑새 들어간다, 파랑새 들어간다.”
허름한 외투에 자줏빛 담요를 칭칭 두른 여성이 나타나자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 방호원들의 무전이 바빠졌다. 털썩 주저앉은 여성 주변으로 방호원들이 모여들었다. “대책을 말하란 말입니다. 내 돈이 어떻게 되는지 알려달란 말입니다.”
통합창원시의 동양그룹 채권투자 피해자 대표 이순자(48·여)씨는 지난달 29일 상경해 자신의 승용차 안에서 숙식을 해결하고 있다. 지난달 1일 이씨는 휴대전화에 찍힌 ‘법정관리’라는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동양증권 마산지점에 묻자, 직원은 “1000만원을 꾼 사람이 100만원밖에 없어 법원에 찾아간 것”이라고 답했다. 마음이 타들어가던 이씨는 승용차 내비게이션의 행선지에 ‘청와대’를 입력했다.
한밤중 도착한 이씨는 청와대 앞에 차를 대고 하룻밤을 보냈다. 다음날, 이씨를 깨운 사복경찰이 “청와대는 함부로 오는 곳이 아니고, 다른 곳들을 먼저 가보라”고 했다. 이씨는 경찰이 불러주는 대로 국민권익위원회, 감사원, 금감원을 메모지에 적었다. 서류에 서명도 안 했는데 1000만원이 사라지게 된 일을 이들이라면 이해시켜 주리라 믿었다.
하지만 ‘승용차 노숙’은 생각보다 길어졌다. 권익위에서 만난 공무원은 “국민의 권리와 이익을 보호하는 기관”으로 소개하면서도 “금융 분쟁은 도울 수 없다”고 했다. 권익위의 말을 듣고 감사원에 기업 비리를 신고했다. 밤새 서류를 꾸며 감사원에 냈더니, 담당 직원은 박근혜 대통령 옆에 적힌 자신의 이름을 수정액으로 지웠다. 그는 “동양증권 이야기는 듣기도 싫다”고 했다.
절망한 이씨는 지난 1일 서울 청계천로 동양그룹 본사로 차를 몰았다. 이 건물에서 제일 높은 사람이 누구냐고 묻자 직원들은 “모른다”고 했다. 눈에 들어온 건너편의 동양 로고를 보곤 엉뚱한 동양생명 건물인 줄도 모른 채 비상계단을 올랐다. 이씨는 11층 난간 위에서 “살아 있는 장기는 기증하고, 회사채 보상금이 나오면 군대에 있는 아들 앞으로 보내달라”고 소리쳤다. 곧 나타난 동양증권 노조위원장의 뺨을 치는 사이 경찰관들이 이씨를 끌어내렸다.
금감원이 두 번째 피해자 설명회를 연 지난 8일, 이씨는 “태스크포스(TF)가 뭔지는 관심 없다. 동양증권은 ‘금감원이 막았다면 우리도 안 팔았을 것’이라고 하는데 누가 잘못한 것인지를 말해 달라”고 부르짖었다. 이씨는 그날 이후 금감원에서 ‘파랑새’라는 별명이 붙은 악성 민원인이 됐다. 노숙하던 금감원 주차장에서도 쫓겨나 인근 건물들을 전전하게 됐다. 금감원 방호원들은 “처음에는 갈 곳 없는 분의 편의를 봐 드렸지만, 시위 목적으로 계속 차를 대고 있어 제지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씨는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홑바지가 춥다”며 “우리가 모은 돈이 어디로 갔는지만 알면 좋겠다”며 울음을 터뜨렸다. 쉬는 날도 없이, 새벽부터 밤 10시까지 공장에서 꼬박 일해 얻은 월급은 120만원을 넘긴 적이 없다. 1000만원이 그런 돈인데, 2조원이 한 번에 사라졌다는 것은 믿기 어려운 일이었다. 지난 13일 이씨는 금감원 금융민원센터 안에 들어올 수 있었지만, 면담을 요청한 간부는 만나지 못했다.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