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교회협의회(WCC) 제10차 총회가 지난 8일 막을 내렸다. 이번 총회에는 WCC 회원교단 뿐 아니라 세계복음주의연맹(WEA) 국제로잔복음화운동(국제로잔) 침례교세계연맹(BWA) 등 복음주의권 세계교회 지도자들도 참석, 전 세계교회가 직면한 생명 정의 평화 문제를 논의하고 다양성 속 일치를 추구하며 정의·치유의 복음을 전하기로 했다는 점에서 성공적 대회로 평가받고 있다.
하지만 일부 보수진영과 성도들은 여전히 WCC에 대한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이에 보수 복음주의권의 대표적 학자인 김영한 기독교학술원장과 에큐메니컬 운동을 대변하는 박성원 영남신학대 석좌교수로부터 이번 총회에 대한 평가를 들어봤다. 김 원장은 한국복음주의협의회 신학위원장과 WEA 아시아신학위원장을, 박 교수는 WCC 중앙위원을 역임했다.
-이번 총회를 평가해 주신다면.
ㅤ△김영한 원장=개신교 역사가 130년 밖에 안 되는 한국교회가 세계교회 대표들과 함께 WCC 총회를 열었다는 것은 큰 축복이다. 2000년 에큐메니컬 역사 속에서 한국교회가 WCC 총회를 개최했다는 것은 한국교회가 글로벌 처치에 진입했으며, 중요 위치에 서게 됐다는 뜻이다. 한국교회의 사명이 무척 커졌다.
ㅤ△박성원 교수=한국 개신교는 세계교회 안에서 어떻게 보면 젊은 교회라 할 수 있다. 그런데 한국이라는 같은 시공간 안에 전 세계 교회가 모였다. 상징적으로 봤을 때 한국교회와 세계교회 사이에 대교(大橋)가 세워진 것이다. 예장 백석과 오순절교단이 참여하긴 했지만 보수권 교회가 함께 하지 못한 것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보수 교계에선 북한 인권문제 제기가 부족했다고 지적한다.
ㅤ△박 교수=북한인권 문제는 유엔에서도 다루기 힘든 정치적 문제다. 충분히 준비하지 않은 상황에서 섣불리 거론하는 것은 쉽지 않다. WCC는 남한교회 편도 북한교회 편도 들지 않는다. WCC는 북한이 국제사회에 나올 수 있도록 북한교회를 도왔다. 1980년대 도잔소 회의처럼 한반도 통일운동도 전개했다. 이번 총회에선 한반도의 평화통일과 화해를 위해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고 선언했다. 2014년부터 3년간 한반도 문제를 중요하게 다룰 것이다.
ㅤ△김 원장=보수교회는 WCC가 적어도 세계적 기구인 만큼 체포되어 고문을 당하고 처형되는 지하 교회 교인들의 문제를 인권차원에서 다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WCC는 북한의 교회와 예배가 진짜인지 의심스러워하는 한국 보수교계의 정서를 읽지 못했다.
-한반도 선언문에서 북한 경제제재 해제를 촉구한 것도 문제 삼는다.
ㅤ△박 교수=북한이나 쿠바에 경제 제재를 하게 되면 고통당하는 사람은 어린이와 임산부 등 주민들이다. 정권이 손을 들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큰 착각이다. WCC는 인도주의적 입장에서 하나님의 백성을 먹여 살려야 한다는 것을 기본원칙으로 삼고 있다. 이걸 어떻게 좌편향이라고 할 수 있나. 오히려 우편향이기에 좌편향으로 보일 뿐이다.
ㅤ△김 원장=WCC는 인도주의적 방법으로 접근하지만 어떻게 보면 북한정권 유지를 묵인하는 게 아닌가 싶다. 그런 면에서 교회 연합기구인 WCC가 경제제재를 해제하라 말할 필요가 있었는지 의문이다. WCC의 정의가 왜곡되면 편파적 정의가 될 수 있다. 이번 선언문은 용공이라는 오해가 깨끗하게 풀릴 수 있는 좋은 기회였지만 또다시 오해를 안게 됐다.
-동성애, 다원주의에 대한 오해도 말끔히 씻지 못했다고 보수교계가 주장한다.
ㅤ△박 교수=WCC에는 하나님, 예수님, 성령님이 하나라고 고백하는 140개국 349개의 다양한 교파가 소속돼 있다. 따라서 신앙의 강조점이 다양하다. 다양한 의견을 존중하며 깊은 토론을 통해 일치하는 과정을 중요시한다. WCC는 스웨덴 웁살라 총회 때부터 성 문제를 다뤘다. 동성애, 일부다처제 문제가 아니라 인간의 성이 무엇이며 이혼, 조혼, 성노예, 문란한 성문제에 대한 논의였다. 이때 논의된 것은 하나님이 주신 성이 타락, 쾌락의 도구가 아니라 은총의 도구였다는 것이다. 분명하게 말하지만 WCC는 동성애를 지지한 적이 없다. 다만 그들이 소외돼선 안 되며 동성애가 현실로 다가온 서구교회의 경우 남의 이야기처럼 바라봐선 안 된다는 뜻이다. 이는 동성애 지지와는 전혀 차원이 다른 이야기다.
ㅤ△김 원장=WCC는 소수의 의견을 존중하며 95% 이상의 찬성을 얻어 결정하는 합의제 구조를 갖고 있다. 따라서 종교다원주의, 동성애, 용공을 지지할 수 없다. 한국교회 안에는 아직도 WCC가 동성애, 종교다원주의를 공식 결의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건 성숙한 태도가 아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회원교회가 사도신경을 고백하느냐는 것이다. WCC가 니케아 신조를 고백했다는 것은 충분히 기독교 정체성을 갖고 있다는 말이다. 교파의 교리는 믿는 사람 각자의 취향에 따른 것이다. 교파의 교리가 구원을 결정짓는 문제는 아니다. 천국에서도 장로교, 감리교, 성결교가 나눠진다고 생각하나. 동성애 문제는 목회적 현실이니 진지하게 바라보자는 것이다. 내 교회, 내 교단 중심의 지나친 자기위주의 신앙을 극복해야 한다. 진리추구를 위해 보다 폭넓은 관용의 정신이 필요하다.
-이번 총회에서 정의, 평등 문제가 부각됐다.
ㅤ△김 원장=현대사회는 자유방임주의 때문에 빈부 격차가 심해지고 있다. 제3세계는 인종적 갈등, 전쟁의 문제 때문에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이런 구조 속에서 공교회가 세상을 향해 예언자적 입장에서 정의와 평화 이야기를 했다는 것은 의미가 크다. 이것은 공교회의 사명이다.
ㅤ△박 교수=복음의 권위는 정의와 평화에 헌신할 때 있다. ‘복음을 사회와 삶 속에서 실현하자’는 WCC의 가치는 WEA나 국제로잔이나 차이가 없다. ‘온 교회가 온 복음은 온 세계에 온전하게 전하자’는 현대 선교론에 이견이 없는 것이다. 한국교회는 개인구원과 은혜를 강조하며 성장일변도로 달려왔다. 이제는 복음을 실천하는 차원으로 나아가야 한다.
-WCC 총회 이후 한국교회가 어떻게 되리라 전망하나.
ㅤ△김 원장=한국교회는 50여년 전 WCC의 실체도 제대로 모르고 갈라졌다. 하지만 지난 10일간 WCC의 실체를 구체적으로 체험했다. 한국교회는 눈을 열고 경건한 신앙이라는 강점을 세계교회와 나눠야 한다. 세계교회 주류에 참여한다는 넓은 마음을 가져야 한다.
ㅤ△박 교수=한국교회는 신학적 대화와 고민의 깊이가 더욱 깊어져야 한다. WCC가 믿는 신앙신조가 무엇인지, 보수교회의 신앙내용이 무엇인지, 예수를 믿는다는 게 현실 속에서 무엇을 의미하는지 대화를 통해 복음의 스펙트럼을 넓혀야 한다. 존 스토트의 말처럼 사회참여 없는 복음은 공허하고 무능하다. 이번 총회를 계기로 수준 높은 세계교회에 들어가 선교와 봉사, 성경해석을 함께 했으면 좋겠다.
-2014년 10월 WEA 총회가 한국에서 열린다.
ㅤ△김 원장=이번 총회에서 발표된 선교선언에 WCC와 WEA가 함께 함으로써 서로 대립적인 기구가 아니라는 것이 확인됐다. 그런데 한국기독교총연합회가 WCC를 반대하는 바람에 이상하게 됐다. 1974년 로잔언약을 보면 복음전도에서 사회적 책임은 안경의 짝이라고 인식하고 있다. 한쪽만 있어선 안 된다는 말이다. 내년 WEA 총회는 한기총이 리더십을 개선하고 제대로 준비해야 대회를 성공적으로 치를 수 있을 것이다. 잘못된 것을 고치지 않으면 WEA 총회가 불발될 가능성마저 있다. WCC 총회를 성공적으로 개최한 한국교회는 보다 넓은 마음으로 WEA를 성공적으로 치러야 한다.
ㅤ△박 교수=한국교회는 WCC 총회 경험을 토대로 신학적 대화도 많이 하면서 WEA 총회를 잔치로 치러야 할 것이다. 한기총과 한국교회연합 등 보수교회 전체가 판을 다시 짜고 WEA 총회를 준비해야 한다.
정리=백상현 기자 100sh@kmib.co.kr
[WCC 부산총회 평가 특별좌담] “총회 개최 한국교회의 축복”-“보수교회 함께 못해 아쉬움”
입력 2013-11-14 17:46 수정 2013-11-14 21: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