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신도를 위한 알기쉬운 신학강좌-10. 기독교와 미래 : 21세기의 도전 ] ③ 신앙의 공공성
입력 2013-11-14 17:20
기독교, 공적 역할 회복할 수 있다
인간은 주어진 시대정신 속에서 산다. 스스로 의식하지 못하더라도 자신이 속한 시대의 세계관이나 우주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기독교인도 예외는 아니다. 21세기에 시대정신은 급격한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시대정신의 변화는 우리의 삶이 속한 ‘공적인 영역’에서 신앙의 의미를 ‘되묻게’ 만든다. 신앙이 ‘삶의 영역’에서 활력을 잃는다면 정말 위기다.
사고를 구성하는 틀
우리 사회가 속한 시대정신을 구성하는 요소는 많다. 그중에서 세계관과 우주관을 대표적으로 말할 수 있다. 세계관은 이 세계에 대한 이해와 자신의 이해가 포함된다. 철학적 측면이 있다. 인간은 세계관에 따라 자신과 자신이 속한 사회를 이해한다. 우주관은 세계관보다는 자연과학적 개념에 가깝다. 이 세계가 속한 우주에 대한 관점이다. 사회적 가치, 자연과학, 철학, 기술문명 등 다양한 요소가 얽혀 세계관과 우주관을 형성한다.
세계관과 우주관은 사고의 틀이다. 그 위에서 인간의 생각과 가치가 형성되는 기본 뼈대다. 한 인간이 가지는 신앙도 그 시대의 세계관이나 우주관과 무관하지 않으며, 때로는 강력한 영향을 받는다.
몇 개의 상징적인 예를 보자. 16세기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은 세계관과 우주관 모두를 바꿨다. 과학의 영역에서 발견된 지동설은 당시의 기독교적 세계관, 그 세계 안에서의 인간 이해, 나아가 성경관에도 영향을 주었다. 1859년 다윈의 ‘종의 기원’이 처음 나왔을 때 일부 학자들만 관심을 기울였고 대다수는 조롱했다. 하지만 지금은 기독교 국가에서조차 모든 공교육에서 진화론을 가르친다. 우리의 시대정신은 창조론 대신 진화론으로 대변되는 ‘과학의 발전’을 받아들였다.
이 시대는 다양한 분야의 연구와 발전이 급격하게 세계관과 우주관을 변화시키고 있다. 조만간 생명의 기원과 우주의 기원이 새롭게 밝혀지고, 그 결과가 학교에서 가르쳐지게 될 가능성이 크다. 기독교는 근본적인 위기 상황을 맞을 것이다.
교회가 이런 상황에 그냥 있으면 더는 하나님의 창조, 피조세계의 완성, 하나님의 섭리를 논할 공간이 없어진다. 이러한 일이 닥치는 것은 시간문제이고, 위기가 현실화될 가능성은 아주 높다. 이런 흐름이 완전히 대중적인 ‘시대정신’이 되고 난 뒤 기독교가 대응해서는 이미 늦다.
종교적 영역으로 후퇴
18세기 근대 이후 지금까지 급격히 달라진 세계관과 우주관이 공교육에 큰 영향을 미쳤다. 교회의 가르침은 공적인 영역에서 물러났다. 교회의 가르침은 일요일에 교회 내에서 행해지는 것으로 국한됐다.
이 과정을 기독교의 역사에 비춰보면 기독교가 점차 공적인 영역을 상실해가는 역사였다. 먼저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의 분리가 일어났다. 정치, 경제, 과학, 역사 등이 전문화되면서 공적인 영역을 차지했다. 사람들의 일상생활과 사회생활은 각기 그 영역의 법칙에 따라 영위되었다. 기독교 진리가 모든 영역에 미친다는 생각은 더는 가능하지 않았다.
기독교는 공적 영역을 거의 상실했으며, 교회생활을 중심으로 하는 종교적 영역과 개인의 내면에 치중하는 사적 영역으로 물러갔다. 기독교가 공적인 영역에서 그 역할을 상실할 때 이 사회가 기독교 가치관과 멀어지는 것은 당연하다.
근대의 세계관과 우주관이 기독교에 끼친 첫 파장은 기독교를 종교적이고 내면적인 영역으로 후퇴시킨 것이다. 기독교가 새로운 세계관과 우주관의 변화에 대응하지 못한 결과는 치명적이었고, 기독교가 사회와 문화 속에서 가지는 영향도 줄어들었다. 이것이 오늘날 기독교 인구는 많지만 삶이라는 공적 영역에서 활기를 잃은 이유다.
신앙의 공공성 회복
새로운 시대가 되면 생각하는 방법, 언어의 사용, 가치관, 세계관과 우주관이 달라진다. 기독교는 성경의 주제들을 새롭게 해석하고 자신의 시대와 ‘대화성’을 가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달라진 시대정신 안에서 성경의 어떤 것도 동시대인에게 전달하지 못한다.
신앙의 ‘공공성 회복’은 일상에서 신앙의 의미를 찾는 작업에서부터 이 시대를 지배하는 세계관과 대화를 하는 것까지 다양한 형태로 추진돼야 한다. 신앙의 공공성 회복을 위한 대안으로 두 가지를 제안한다.
첫째, 사회의 다양한 영역에서 신앙의 의미를 추구하고, 그 결과를 나누는 ‘신앙운동’이 일어나야 한다. 즉 사회생활이 어떤 신앙적 의미가 있는지, 혹은 직장에서 지내는 하루가 신앙적으로 무슨 의미가 있는지를 찾아야 한다.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생활, 매일 행하는 경제행위에 숨어 있는 신앙적 의미가 확보될 때 신앙은 공적인 의미를 가진다.
신앙과 공적인 영역을 연결하는 작업은 목회자와 평신도의 협력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기독교인들이 여러 분야에서 활동하며 체험한 신앙의 의미를 찾아내고 함께 나눠야 한다. 자신이 찾아낸 신앙의 공적인 의미를 나누는 ‘방법’은 다양하다. ‘삶과 신앙’을 연결하는 동호회 형성, SNS를 통한 공유, 삶 속에서 신앙 체험하기, 삶과 신앙을 주제로 하는 문화행사, 기독교 언론에서 삶과 신앙의 괴리를 줄일 수 있는 코너 마련 등을 들 수 있다.
둘째, 신학운동의 토대가 되는 이론작업이다. 이를 위해 공적인 영역을 구성하는 다양한 요소와 대화하기 위한 기구가 필요하다. 이는 교단 차원에서 해야 할 일이다. 과학과도 대화를 해야 한다. 과학은 적이 아니다. 창조와 진화, 인간복제, 성경과 생명현상, 유전자 결정론, 성경과 우주, 부활과 다차원, 기독교와 문화의 관계, 구속사관과 일반 역사관의 조화, 기독교와 타종교, 21세기의 인간관 등에 대한 구체적인 이론 정립이 이루어져야 한다. 신학자, 목회자, 각 분야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모임의 결성이 시급하다.
위기는 언제나 기독교 안에 있다. 새로운 시대에 들려오는 하나님 음성을 외면하고, 그냥 있으면 위기가 커진다. 기독교가 성경의 진리를 재해석하면서 그 시대에 하나님의 뜻을 새롭게 제시할 때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
김동건 교수 <영남신대 조직신학, 저자연락은 페이스북 facebook.com/dkkim2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