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길] 서민 피해없는 ‘정의로운 금융’으로…

입력 2013-11-14 18:30


로버트 쉴러/알에이치코리아/새로운 금융시대

올해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로버트 쉴러 미국 예일대 교수가 지난해 발표한 책이다. 처음에 그는 책을 예일대에서 25년간 해오고 있는 금융 관련 강의를 듣는 학생들을 위해 쓰기 시작했다. 그는 “꿈과 현실을 어떻게 연결시킬지 고민하는 젊은이들에게 현대 금융자본주의 시스템을 이해시킨 후 사회에 첫발을 내디딜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러다 2008년 강의를 인터넷에 공개하면서 온라인 강의를 듣는 이들이 몰리자 이들로까지 독자층을 확대해 써나갔다.

그의 결론은 원제 ‘Finance and the good society(금융과 착한 사회)’가 암시하듯 “금융이 더 공정하고 정의로운 사회로 가는 희망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2007년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촉발된 글로벌 금융위기로 전 세계가 휘청거린 것을 생각하면 파격적인 결론이 아닐 수 없다. 이 때문에 그는 책을 읽은 독자들로부터 항의 이메일도 많이 받았다.

한동안 국내 신문의 머리기사를 장식한 동양그룹 사태를 떠올려보면 금융에 희망을 가져도 된다는 주장이 터무니없게 들릴 수도 있다. 자금난 타개를 위해 동양그룹이 회사채와 기업어음(CP) 등을 개인 투자자에게 불완전판매하면서 손해를 본 피해자만 4만여 명에 달한다. 하지만 저자의 이력을 들여다보면, 왜 그가 이런 이야기를 하게 된 것인지 궁금해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는 일단 월스트리트에 대해 매우 비판적인 시각을 갖고 있는 행동경제학자다. 2000년 3월 ‘이상과열(Irrational exuberance)’이란 책을 통해 IT 기술 혁신에 대한 과잉 기대 때문에 주식 시장에 거품이 끼였다고 주장해 일약 대중의 시선을 잡아끌었다. 또 2007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도 예측했다.

그는 이런 입장을 바탕으로 찬찬히 금융의 세계로 독자들을 안내한다. 책은 일종의 금융 개론서를 연상시킨다. 먼저 1부에서 금융계의 다양한 주체들을 조명한다. 기업을 이끄는 최고경영자(CEO)부터 자산운용사, 보험회사, 로비스트, 정책 결정자에 이르기까지 망라한다. 2007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계기로 이들은 어려운 금융 상품의 속성을 이용해 하나같이 자기 잇속만 채운 사람들로 대중의 머릿속에 각인돼있다. 하지만 저자는 로비스트도, 트레이더도 적절히 규제만 된다면 문제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제대로 된 금융시장을 위해 이들에게서 최선의 행동을 끌어내도록 하고, 창조적인 아이디어를 통해 도덕적인 월스트리트 문화를 만들어가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이 바로 금융의 민주화라는 게 그의 주장이다. 그는 “금융의 민주화가 이뤄진다면 권력과 부의 무작위적인 재분배를 막는 효율적인 리스크 관리 제도에 좀 더 의존하게 될 것”이라며 “금융은 우리 삶에서 무작위성을 증가시키는 게 아니라 감소시키게 될 것”이라고 역설한다.

구체적으로 불평등 연동세제와 불평등 보험을 제시하는 대목이 흥미롭다. 이는 각 세율 구간에 대해 고정된 소득세율을 적용하는게 아니라, 세율을 소득 불평등의 통계적 측정치에 연계하는 새로운 방식이다. 이런 식의 연동세제를 통해 누진세율을 적용해 불평등을 해소하자는 것이다.

더불어 ‘금융의 인간화’를 강조한다. 행동경제학으로 어느 정도 개념화된 것인데, 인간의 속성을 금융 산업에 접목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토대로 그는 현대 사회에서 금융이 시장 경제의 성장축 구실을 했으며 앞으로도 선의의 기능을 할 수 있다고 말한다. “창의적인 금융 시스템은 아이디어를 제품과 서비스로 변환시키고, 새로운 외과 수술 기법 개발과 제조업의 생산 기술 향상, 전문적 과학 연구뿐만 아니라 공공복지 시스템 구축에도 도움을 준다.”

김나래 기자 nar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