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길] 세계는… 우리는… 이야기로 풀어 쓴 ‘과거 청산’
입력 2013-11-14 18:44
적과 함께 사는 법/김지방/이야기나무
대한민국에서는 지금도 역사 전쟁이 한창이다. 한 쪽에선 상대방을 친일파와 군부독재의 앞잡이라고 부르고, 맞은편에선 그들을 빨갱이를 추종하는 종북 좌파라고 매도한다. 지칠 법도 하건만 싸움은 끝날 기색이 보이지 않고 ‘북방한계선(NLL) 문제’ ‘국가정보원의 대선 댓글 개입’ 등으로 확전된다. 과거사를 넘어선 화해와 용서, 적과의 공존은 불가능한 것일까.
저자는 이런 질문에서 시작해 진정한 용서와 화해의 길을 찾아 나선다. 그 길은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인종 갈등 청산으로부터 출발해 캄보디아의 좌파 독재 청산, 아르헨티나의 우파 군사정권 청산 과정을 살펴보는 것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프랑스가 제2차 세계대전 나치 부역자 문제를 다루는 과정, 미국의 흑인 차별 폐지 과정을 살펴본다. 마지막으로 발걸음을 한국으로 돌려 1948년 여수·순천 사건과 19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과 관련해 여전히 진행 중인 과거 청산 과정을 보여준다.
국민일보 기자인 저자는 과거 청산과 관련해 법률적인 문제와 보상 절차 등 딱딱하게 접근했던 책들과 달리 각 나라의 상황을 마치 한 편의 이야기를 들려주듯 풀어간다. 무엇보다 피해자, 때론 가해자, 중재자가 됐던 사람들의 목소리를 통해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 선 인간의 존재에 대해 생각해볼 기회를 준다는 점이 미덕이다.
가령 남아공의 흑백 인종 갈등 문제는 ‘진실과화해위원회’의 위원장을 맡았던 데스몬드 투투 대주교를 통해 들려준다. 또 여수·순천 사건과 관련해서는 고(故) 손양원 목사의 딸 동희씨의 삶을 통해 가해자와 함께 산다는 것의 의미를 되새김질한다. 손 목사는 두 아들을 죽인 좌익 학생 안재선을 양자로 들이며 즉각 용서했지만, 두 오빠를 잃은 동희씨는 이를 쉽게 받아들일 수 없었다. 20여년의 시간이 흘러 안재선이 죽음을 앞두고 찾아와 용서를 구했을 때야 비로소 동희씨는 그를 용서할 수 있었다. 나라와 상황은 다르지만 결국 그 속에는 이렇듯 형언할 수 없는 개인의 고통의 시간이 있었기에 저자는 결코 쉽게 결론 내리지 않는다.
“역사의 고통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증오심과 복수심이 아니라 합리적 비판과 성찰을 얻기 위해, 화해와 공존의 미래를 만들기 위해 우리는 수도의 과정에 있는지도 모른다.”
김나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