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3 부모 “난 대입 페이스메이커라오”
입력 2013-11-14 05:47
고3 수험생 자녀를 둔 노미화(51·여)씨의 하루는 딸을 깨우는 것으로 시작한다. 지난 7일 대학수학능력시험이 끝나 조금 여유로워진 아침이지만 노씨의 하루는 여전히 분주하다. 대학 입학을 향한 레이스는 이제 시작됐다. 냉장고에 붙여 놓은 스케줄 표는 대입설명회 일정으로 빼곡하다. 식탁에 놓인 신문에는 입시 관련 기사가 형광펜으로 강조돼 있다. 노씨는 기나긴 대입 여정에서 딸의 ‘페이스메이커’(Pace maker)가 되기를 자처했다.
페이스메이커는 중·장거리 달리기나 자전거 경기에서 주전 선수가 일정 속도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함께 달려주는 보조 선수를 뜻한다. 주전 선수의 기록 단축이나 우승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며 묵묵히 앞에서 뛴다. 수능이 끝나면서 많은 학부모들이 자녀를 위해 김씨처럼 페이스메이커로 대입 레이스에 뛰어들었다.
김광석(57)씨는 올해 처음으로 이 레이스에 참가했다. 그의 손에는 손수 만든 입시 일정표가 항상 들려 있다. 이 표에 적힌 일정을 꼼꼼히 살피며 지금까지 열린 모든 대입설명회를 참석했다. 쏟아지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옳은 정보를 골라내고 자녀에게 맞는 정보를 찾아내는 작업이 매일 반복된다. 김씨의 컴퓨터 파일 폴더에는 논술 자료부터 공부 방법까지 대입에 관해 없는 것이 없다. ‘수험생 자녀와 소통하는 방법’까지 있다.
김씨는 “대입 제도가 너무 복잡하고 대학마다 다양한 전형과 변수가 있다보니 이렇게 직접 뛰어들지 않을 수 없다”며 “자녀들이 시험에 전념할 수 있게 해주고 싶다”고 말했다. 김씨의 하루는 늦은 밤 새롭게 얻은 정보를 아들과 나눈 뒤에야 마무리된다.
페이스메이커 역할은 정보 제공으로만 끝나지 않는다. 수험생의 발이 되기도 하고 상담사 역할도 한다. 다른 이의 승리를 위해 달리는 페이스메이커처럼 학부모들도 자녀의 성공을 위해 이러한 희생을 감수한다.
이런 페이스메이커 부모들을 바라보는 걱정 섞인 시각도 있다. 전문가들은 페이스메이커 역할을 자칫 잘못하면 자녀 주변을 맴돌면서 지나치게 간섭하고 과잉보호하는 ‘헬리콥터 맘’으로 변질될 수도 있다고 우려한다.
한동대 심리학과 신성만 교수는 “부모의 개입이 지나치게 강조됐을 경우 대입 이후에도 자녀들이 부모에게 의존하는 경향이 생긴다”며 “모든 걸 챙겨주고 지시하기보다는 동기를 강화하는 대화로 유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황인호 기자 inhovato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