뉼린 주한 에콰도르 대사 “아마존 오염 美정유사 20년째 배상 거부”

입력 2013-11-13 17:59 수정 2013-11-13 22:40


니콜라스 트루히요 뉼린(사진) 주한 에콰도르 대사는 13일 미국 석유회사 셰브론이 아마존을 오염시키고도 20년째 배상을 거부하고 있다며 무책임과 몰염치를 지적했다. 셰브론은 세계 석유업계 2위 규모의 다국적 기업이다.

서울 공평동 대사관에서 기자간담회를 자청한 뉼린 대사는 “셰브론은 피해 보상은커녕 수백만 달러를 들여 (에콰도르가 억지를 쓴다는 식으로) 거짓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며 “심지어 미국 뉴욕연방법원에 아마존 원주민을 전부 고소하면서 ‘마피아처럼 돈을 뜯어내려 한다’고 주장했다”고 말했다.

에콰도르 아마존 원주민이 셰브론과 법정 공방을 시작한 건 1993년이다. 소송 상대는 미국 대형 석유회사 텍사코였다. 셰브론은 2001년 이 회사를 인수하면서 소송도 물려받았다.

텍사코는 에콰도르 수쿰비오·오렐랴나 지역에서 석유개발 사업을 하던 64∼92년 유독성 폐기물을 무단 방류했다. 처리 비용을 아끼기 위한 것이었다. 아마존 일대에는 폐유 7100만ℓ, 원유 6400만ℓ가 버려졌다. 오염 면적은 서울의 13.4배(8100㎢)에 달한다.

간담회에서 상영된 동영상은 피해 지역 모습을 담고 있었다. 물 대신 시커먼 기름으로 채워진 웅덩이가 수풀 사이로 넓게 드러났다. 한 여자아이가 웅덩이에 긴 막대를 찔러 넣고 휘저었다. 검은 물은 녹은 고무를 떠내는 것처럼 끈적거렸다.

뉼린 대사는 “주민들은 오염된 물을 마시게 되는데 그 결과 암 발병률이 다른 지역에 비해 아주 높아졌다”며 “그런데도 셰브론은 과학자를 동원해 유독성 물질 때문이 아니라 자연적 현상이라고 주장한다”고 전했다. 아마존 오염으로 직접 피해를 입은 주민만 3만명이라고 설명했다.

에콰도로 법원은 2011년 2월 셰브론이 아마존 원주민에게 96억 달러를 배상하고 공식 사과하라고 판결했다. 사과하지 않으면 배상금을 두 배로 올리겠다는 조건도 달았다. 셰브론은 사과를 거부하고 항소했다. 1년 뒤 에콰도르 법원은 배상금을 190억 달러로 올렸다. 셰브론은 미국에서 에콰도르 법원의 판결을 취소해 달라고 항고했지만 미 대법원이 기각했다.

셰브론은 지난 9월 헤이그 국제상설중재재판소(PCA)로부터 배상금을 지급할 필요가 없다는 판결을 받아냈다. 텍사코와 에콰도르 정부가 97년 맺은 양자 투자협정에 따르면 배상 책임이 없다는 주장이 받아들여졌다. 에콰도르는 텍사코가 사업을 끝내고 철수한 게 92년인데 5년 뒤 협정을 맺었다는 건 시기상 말이 안 된다고 반박한다.

뉼린 대사는 “기존 판례를 보더라도 PCA는 대기업 손을 들어준 사례가 100%라고 볼 수 있을 정도로 많다”며 “개발도상국과 약자들이 지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주한 에콰도르 대사가 사정 설명에 나선 건 여론전(戰) 성격이 짙다. 뉼린 대사는 셰브론의 대응을 비판하면서도 “우리 정부는 이 문제나 판결에 개입하지 않는다. 내 역할은 국민 보호 차원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리는 것”이라며 선을 그었다. 에콰도르 대법원은 이날 셰브론에 대해 95억1000만 달러(약 10조2000억원)를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지난해 판결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배상금만 절반으로 줄였다.

강창욱 기자 kcw@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