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방 기자, 필리핀 ‘타클로반’ 르포… “3∼4일내 식량 지원 없으면 폭동날 것”
입력 2013-11-13 17:53 수정 2013-11-13 23:05
13일 오전 필리핀 레이테주 타클로반 시청 앞. 상황실이 설치된 이곳에서 구호를 총괄하는 유엔 인도주의업무조정국(OCHA)의 세바스찬 로드 스탬파 아시아·태평양 조정관은 “3∼4일 내에 식량을 충분하게 공급하지 못하면 대규모 폭동이 일어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식량을 운송할 수단도 마땅치 않다”며 “유엔이 당장 구호단체를 위해 운송수단을 지원하기 힘든 만큼 구호단체도 각자 알아서 행동해주기 바란다”고 덧붙였다.
스탬파 조정관의 걱정대로 이미 일부에서는 폭동 조짐을 보이고 있다. 전날 이재민 수천명이 타클로반에 있는 정부 식량창고를 습격해 10만 가마의 비축미를 약탈했다. 이 과정에서 이재민 8명이 창고 건물 벽이 무너지면서 압사당하는 참극까지 벌어졌다. 창고 주변에 약탈을 막기 위해 군과 경찰이 있었고 발포령까지 내려졌지만 굶주림에 지친 이재민을 막을 수는 없었다. 필리핀 정부는 추가 약탈 우려로 인해 정부 식량창고의 소재지를 공개하지 않을 정도다.
실제로 이날도 타클로반과 인근 사마를 잇는 검문소 앞에서는 취재진이 있는 가운데 탈옥 죄수와 정부군 간에 교전이 벌어지기도 했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에 주변은 엉망이 됐다. 필리핀군은 주의하라며 기자들을 대피시키기도 했다. 한 여자아이는 상의도 없이 필사적으로 검문소 방향으로 대피했다.
현재 필리핀에는 국제사회의 구호물자가 속속 도착하고 있다. 하지만 도로 등 인프라가 마비되면서 정작 피해 현장에는 물자가 원활하게 지원되지 않고 있다. 일부 물자는 여전히 마닐라나 세부에 발이 묶인 상태다.
이재민을 위한 대피소가 타클로반에만 있다보니 사람들이 다 이곳으로 몰려오고 있다. 공항 일대는 죽음의 도시를 탈출하려는 행렬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폐허더미로 변한 타클로반 공항에 도착한 한인 신모(52)씨는 “이게 바로 생지옥이구나 싶었다”며 그간 말로 다 할 수 없었던 고통을 털어놨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이 파견한 인력들도 속속 현지에 도착하고 있다. 외교부 신속대응팀은 연락이 닿지 않는 교민 주소지를 직접 방문해 안전 여부를 확인할 방침이다. 또 철수를 희망하는 교민에 대해서는 항공편도 마련, 지원할 것으로 알려졌다.
필리핀 정부는 이날까지 2275명이 사망하고 최소한 3665명이 부상한 것으로 파악됐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들의 마음속에는 숫자보다 더 큰 상처만이 남았다.
김지방 기자 fatty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