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연속 ‘보험왕’ 알고보니 검은돈 ‘세탁왕’
입력 2013-11-14 05:50
회삿돈 수백억원을 빼돌려 비과세 보험 상품에 투자하는 수법으로 과세당국의 감시망을 피해 온 업체 대표와 유명 보험설계사들이 경찰에 적발됐다. 보험설계사들은 비자금 세탁을 도와주면서 발생한 실적으로 ‘보험왕’ 타이틀을 거머쥐어 유명세를 탔던 것으로 조사됐다.
경찰청 특수수사과는 13일 각종 비과세 보험 상품을 이용해 비자금을 은닉하고 해외로 빼돌린 혐의(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 등)로 인천·대구에서 인쇄업체를 운영하는 A씨(69)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고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A씨는 납입 내역을 신고할 필요가 없는 비과세 보험 상품 600여개에 가입하는 방식으로 회삿돈을 빼돌려 비자금을 조성했다. 경찰은 A씨가 500억원대 비자금을 조성한 사실을 확인했으나 공소시효 때문에 37억원에 대해서만 혐의를 적용했다고 덧붙였다.
경찰은 국내 굴지의 보험사에서 10년 연속 보험왕에 오른 유명 보험설계사 B씨(55·여)에 대해서도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B씨는 A씨가 조성한 불법자금 200억원을 비과세 보험을 통해 관리하고, A씨의 부인 C씨(63)씨에게 보험 가입 대가로 3억5000만원을 준 혐의(보험업법 위반 등)다.
B씨는 2007년 A씨의 보험을 해약하고 다른 상품으로 변경하겠다고 한 뒤 해약 보험금 60억원을 빼돌려 부동산 투자에 쓴 혐의도 받고 있다. 다른 유명 보험설계사 D씨(54·여)도 A씨 비자금 200억원을 관리하면서 보험 가입 대가로 2억2500만원 상당의 금품을 제공한 혐의로 불구속 입건됐다.
그러나 B씨는 “(빼돌렸다는) 60억원은 A씨와 협의한 대로 매월 보험료에 순차적으로 납입했으며 2009년 완료됐다. 이 점은 A씨와 이견이 없다”면서 “고객 돈으로 부동산을 구입한 사실이 없고 A씨 부인에게 준 3억원대 금품도 보험 가입 대가가 아닌 세무조사 비용이었다”고 반박했다. 이어 “A씨와 보험 거래를 시작하기 전인 1997년 이미 ‘올해의 보험왕’에 선정됐다”고 덧붙였다.
이에 경찰은 “보험설계서와 A씨 진술 등을 보면 B씨 주장은 혐의를 벗어나려는 변명”이라며 “A씨 보험 덕택에 보험왕도 유지할 수 있었다”고 일축했다.
이도경 기자 yid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