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풍향계-황태순] 선거구 조정은 거시적 안목으로

입력 2013-11-13 17:45

“평등선거와 표의 등가성을 고려하되 가급적 인구편차는 줄여나가야 ”

조금은 뜬금 없어 보인다. 내년도 예산안을 집중적으로 다루어야 할 정기국회 와중에 난데없이 국회의원 선거구 문제가 화두로 떠올랐다. 이완구 의원을 필두로 한 새누리당 충청지역 의원들이 나섰다. 이들의 주장은 대략 이렇다. 지난 9월 30일 현재 주민등록상 충청권 인구(526만명)가 호남 인구(525만명)를 앞질렀으니 충청 의석(현재 25석)을 호남 의석(현재 30석)보다 늘려 달라는 것이다.

의석을 늘리는 데 여야가 따로 없는가 보다. 민주당 충청지역 의원들도 내심 적극 호응하는 모습이다. 하지만 민주당의 주류라 할 수 있는 호남권 의원들의 반발이 만만치 않다. 통상 지역구 조정 문제는 총선에 임박해서야 수면 위로 그 모습을 드러내곤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왜 이럴까. 새누리당에는 다선(多選)의 충청권 의원들이 다수고, 이들이 내년에 있을 전당대회를 겨냥해 충청의 맹주 자리를 다투고 있는 것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국회의원 선거구 조정 문제는 정치인들에게는 목숨을 걸 만한 사안이다. 매번 선거구 조정이 있을 때면 중진 의원들조차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당내 실력자나 정권 실세를 찾아다니며 사전 구명운동을 하곤 했다. 하루아침에 멀쩡한 지역구가 사라진다면 가만히 있을 국회의원이 어디 있겠는가. 또 자기 지역도 지키지 못하는 국회의원을 유권자들은 어떻게 평가하겠는가. 중간 중간 멱살잡이와 드잡이가 횡행했던 것도 그런 까닭이다.

우리나라는 물론이고 민주주의 본산이라는 미국에서 과거 게리맨더링이 난무했던 것도 따지고 보면 정치인들의 사활적인 이해관계가 달려 있기 때문이다. 이 문제는 대의민주주의를 운용하면서 ‘평등선거’와 ‘표의 등가성’이란 대원칙에 어디까지 편차를 허용할 것인가의 고민과 연결될 수밖에 없다. 이상적으로는 유권자가 행사하는 한 표의 가치가 동일해야 한다.

현재 우리나라 국회의원 선거구 인구편차는 3대 1을 넘으면 안 된다. 즉 한 선거구의 인구수는 10만3469∼31만406명으로 한다는 것이다. 2001년 헌법재판소는 인구편차의 한계와 관련해 2대 1로 할 것인가, 3대 1로 할 것인가를 놓고 격렬한 논쟁을 벌인 끝에 ‘3대 1’을 넘지 않으면 위헌이 아니라고 결정한 바 있다. 이는 1995년의 헌법재판소의 ‘4대 1’에 비해서는 진일보한 판결이었지만 여전히 표의 등가성 논란은 끊이지 않는다.

2001년 헌법재판소는 판결을 하면서 “앞으로 상당한 기간이 경과한 후에는 인구편차 상하 33과 ⅓%(즉 2대 1) 또는 그 미만의 기준에 따라 위헌 여부를 판단해야 할 것”이라고 판시한 바 있다. 유권자가 행사하는 한 표의 가치를 동일하게 한다는 측면에서는 미국 하원의원과 같이 435개 선거구 간의 편차가 거의 없는, 즉 1.1대 1의 범위 안에 있는 것이 바람직하다.

하지만 미국의 경우 양원제 의회로 하원의원은 주민대표의 성격이 강하고 지역대표는 주마다 2명씩 선출하는 상원의원이 각 주의 이익을 대표하기 때문에 우리의 경우와는 다르다. 우리나라는 단원제를 채택하고 있기 때문에 국회의원은 주민대표와 지역대표의 양면적 성격을 띨 수밖에 없다. 때문에 선거구를 획정하는 데 인구편차와 함께 지리적 상황, 행정구역, 역사적·전통적 일체감 등 여러 요인을 함께 고민해야 한다.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과 예결위 회의장은 로텐더홀을 마주보고 배치돼 있다. 당초 설계할 때부터 통일에 대비한 것이다. 남북이 통일국가를 이루게 되면 아무래도 인구가 적은 북한을 배려하는 지역대표 성격의 상원을 새로이 구성해 양원제로 국회를 운영해야 한다는 판단에서였다.

화두로 떠오른 선거구 조정 문제도 보다 장기적이고 거시적인 안목에서 접근해야 한다. 강창희 국회의장이 내년부터 개헌 논의를 해보자고 제안한 마당에 큰 틀에서 현재의 ‘1구 1인’ 소선거구제가 우리 현실에 적합한지 아닌지도 따져봐야 한다. 근본적으로 현실로 다가올 수 있는 통일에 대비하는 자세도 필요하다. 당장의 이해관계에 얽매여 졸속으로 접근할 일이 아니다.

황태순 정치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