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권리를 찾자”… 대출금리 인하 요구 봇물 터졌다

입력 2013-11-13 17:21


주부 김모씨는 올해 1월 자신이 가입해 있는 보험회사로부터 1년 만기 3000만원 신용대출을 받았다. 당시에는 몰랐다가 나중에 ‘금리인하 요구권’이라는 게 있다는 얘기를 듣고 보험사에 금리인하를 요청했다. 보험사는 김씨의 신용상태를 다시 평가해 대출금리를 연 0.5% 포인트 낮춰줬다.

금리인하 요구권은 대출 고객이 본인의 신용상태에 현저한 변동이 있는 경우 은행이나 보험사 등에 대출금리 인하를 요구할 수 있는 권리다. 2002년부터 여신거래기본약관에 근거가 마련됐으나 은행 등이 홍보를 제대로 하지 않아 처음 5년간 실적이 3710건에 그치는 등 이용 사례가 많지 않았다.

그러다 금융위기 이후 금융소비자 권리가 강조되면서 금융감독원이 지난해 7월 금리인하 요구권 활성화 방안을 내놨다. 가계대출의 경우 만기상환대출에만 적용되던 것을 거치식·분할상환대출로 확대했고, 금리인하 요구 사유에 신용등급 개선 등을 추가했다. 또 은행들이 영업점과 홈페이지를 통해 금리인하 요구권에 관한 홍보를 강화하도록 했다.

금리인하 요구권을 행사하는 방법은 그리 복잡하지 않다. 우선 이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가계여신은 개인신용평가시스템(CSS)에 따라 금리가 차등 적용되는 신용대출이다. 금리인하 청구요건에 해당되는 고객은 신청서를 작성하고 확인서류를 마련해 대출 받은 은행·보험사 등에 제출하면 된다. 해당 금융사는 처리 결과를 수일 내로 고객에게 통보한다. 평가 결과에 따라 금리인하가 안될 수도 있다.

금리인하 청구요건은 가계대출의 경우 직장의 변동, 직위 변동, 소득 상승, 우수고객(주거래고객) 선정, 신용등급 개선, 자산 증가, 부채 감소 등이다. 중소기업에서 대기업으로 직장을 옮겼거나 대리에서 과장으로 승진해 연봉이 올랐다면 금리를 내려달라고 요청할 수 있는 것이다.

기업대출의 경우엔 회사채 등급 상승, 재무상태 개선, 특허 취득, 담보 제공 등의 요건에 해당되면 금리인하를 요구할 수 있다.

지난해 금감원의 활성화 방안 발표 이후 은행들의 금리인하 요구권 처리 실적이 크게 늘었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민주당 민병두 의원이 금감원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국내 은행들이 올해 들어 8월까지 금리인하 요구권을 수용한 실적은 5만3012건(금액 규모는 21조2900억원)에 달했다. 평균 금리인하 수준은 연 1% 포인트로, 고객들이 경감 받은 이자 부담은 연간 2129억원 수준이다.

요건만 충족하면 금리를 낮춰주기 때문에 은행들의 요구 수용(채택)율은 평균 91.7%로 높은 편이다.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의 수용률은 100%였고, 농협은행과 우리은행을 제외한 시중은행들이 모두 90%를 넘었다. 농협은행은 68.9%, 우리은행은 63.5%로 상대적으로 저조했다. 우리은행 측은 13일 “일부 은행들은 100% 승인이 가능한 경우에만 신청을 받았기 때문에 단순 수용률로만 비교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밝혔다. 금감원 관계자도 “농협은행과 우리은행은 신청을 폭넓게 받아 수용률이 낮은 것일 수 있다”고 말했다.

은행·보험사 외에 상호금융과 카드사, 캐피탈사 등을 이용하는 고객들도 올해 안에 금리인하 요구권을 확실히 보장받게 된다. 금감원은 지난달 상호금융, 여신전문금융업, 카드업에 대한 대출금리 체계 모범 규준을 만들어 해당 금융사들에 내려 보냈는데 이 규준에 금리인하 요구권이 명시됐다. 신협, 수협, 산림조합 등 상호금융은 이달부터, 캐피탈·리스·카드사에는 다음달부터 적용된다.

금융당국은 고금리 대출 비중이 높은 제2금융권 고객들의 권리 보장이 시급하다고 판단해 모범 규준에 금리인하 요구권을 적시했다. 각 금융사가 고객이 요구권을 행사할 수 있는 대출 종류 등을 내규에 반영하게 했고, 요구권의 내용·절차를 홈페이지와 상품설명서에 기재하도록 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이전에도 상호금융이나 카드사에 대출금리 인하를 요구할 수는 있었지만 관련 기준이 명확하지 않아 무시되거나 고객이 제도 자체를 모르는 경우가 많았다”며 “모범 규준을 만들어 금리인하 요구권을 확실히 했다”고 말했다.

천지우 기자 mogu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