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전석운] 김진태와 검찰공화국
입력 2013-11-13 17:38
이름 끝에 ‘대원군’ 별칭이 따라붙는 어느 권력자가 그를 ‘최고의 검사’라고 평가했다는 얘기를 듣고 비위가 조금 상했지만 내가 기억하는 검사 김진태의 이미지와 평판도 그리 나쁘지 않다. 서울지검 특수1부 평검사 시절 그는 기자들의 면담 요청을 피하거나 질문에 주저하는 법이 없었다. 언론의 비판적 보도에 화를 내거나 감정적 대응을 하는 모습을 본 적도 없다.
“점심은 마음에 점을 찍듯 가볍게 하는 겁니다. 그래서 점심(點心)입니다.” 서초동 검찰청사 앞 칼국수 집에 기자보다 늦게 들어왔다가 먼저 일어서는 그를 빤히 바라보자 김진태가 싱긋 웃으며 던진 조크였다. 내 앞에는 보쌈김치와 수육이 아직 남은 채였다. 그는 강단 있는 검사였다. 노태우 전 대통령이 1995년 대검 중수부에 처음 소환됐을 때 조사실에서 처음 만난 검사가 김진태였다. 조사가 순조롭게 풀리지 않자 김 검사가 피조사자의 기를 꺾기 위해 사용했다는 제압 방식은 지금도 후배 검사들 사이에 전설처럼 내려오고 있다.
전직 대통령들을 소환해 사법처리하고 ‘역사 바로 세우기’의 첨병 역할을 한 그 무렵 검찰의 위상은 하늘을 찔렀다. 대검 중수부장의 이름이나 얼굴은 연일 신문 1면 머리기사와 9시 뉴스 첫 꼭지에 등장했다. 수사팀은 요즘 아이돌스타 못지않은 유명세를 탔다. 김진태도 수사팀의 일원이었다. 검찰의 전성기였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검찰공화국’이라는 오명도 그때부터 덧씌워지기 시작한 것 같다.
검찰권은 절제되고 견제받아야
이후 검찰은 정쟁의 도구로 전락했다. 정치권은 여야 가릴 것 없이 갈등이 빚어지면 검찰로 달려가는 게 예사였다. 여의도에서 정치적으로 해결할 일을 굳이 고발장에 담아 서초동으로 가져가 검찰에 시시비비를 가려 달라고 매달렸다. 검찰의 결정에 승복하지도 않으면서 여차하면 정치를 사법의 영역으로 끌어들였다. 그러는 사이 검찰은 망가졌다. 정치적 사건을 정치적으로 처리하면서 정치 눈치만 발달했다. 산 권력과 죽은 권력을 대하는 검찰의 태도는 누가 수사를 하든 똑같았다.
“야당 도와줄 일 있느냐.” 조영곤 서울중앙지검장이 윤석열 수사팀장(현 여주지청장)에게 했다는 이 말은 정치검찰의 자화상을 한 마디로 압축하고 있다. 국정원 댓글 수사를 맡고 있는 팀장에게 정파적 시각을 드러낸 것이다. 국감장에서 당사자인 조 지검장 면전에서 이 발언을 폭로한 윤 팀장에 대한 평가는 정파적 시각에 따라 엇갈린다. 다만 나는 정치적 사건에 임하는 검찰 내부의 열정과 갈등에서 검찰공화국의 종말이 멀지 않았음을 느낀다.
기득권 안주는 불신만 초래
검찰이 정쟁의 도구가 된 건 검찰의 제도적 권력이 너무 강하기 때문이다. 수사권과 기소권을 독점하고 있는 검찰의 힘을 빌려야만 상대를 제압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세력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떤 권력도 견제받거나 분산되지 않으면 남용의 위험이 커진다. 검찰권 남용의 폐해는 국민의 인권침해로 직결된다. 사례는 수도 없이 많다.
수뢰 혐의로 구속된 이철규 전 경기경찰청장 사건이 대표적이다. 검찰이 뇌물공여자의 진술만으로 그를 구속 기소했는데 법정에서 허위진술이었음이 드러나 대법원에서 무죄가 났다. 이 전 청장이 본보 인터뷰(11월 13일자 12면)에서 밝힌 내용을 보면 검찰의 얽어매기식 수사에 혀를 차지 않을 수 없다. 그를 포함해 저축은행 비리로 기소된 공직자 4명에 대해 무죄가 확정됐다. 검찰은 철저한 자기반성이 있어야 한다.
김진태 후보자가 검찰총장이 된다고 해서 이런 일이 되풀이되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다. 그러나 부질없을지 모르지만 한 가닥 주문을 하고 싶다. 마음에 점을 찍듯 절제된 점심 식사를 하던 자세로 검찰권 행사와 지휘에 신중을 기해주기를 바란다.
전석운 사회부장 swch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