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이명희] 베타보이들의 항변

입력 2013-11-12 18:21

전통적으로 이화여대, 숙명여대 등 여자대학들은 남학생들의 입학이 금지된 ‘금남(禁男)의 구역’이었다. 1972년 3월 23일 ‘상호교환수강제도’에 따라 이화여대에 수강신청을 한 연세대 대학원의 남학생 두 명이 86년 만에 ‘금남의 배움터’에 들어갔다. 이들은 이대 대학원의 한 여학생과 함께 ‘한국어 음운론’을 수강했다. 82년 겨울방학에는 숙대가 처음으로 남학생들에게 토플과 영어어휘 등 특강을 공개해 50여명의 남학생이 참여하기도 했다.

금녀의 벽은 많이 허물어졌지만 금남의 벽은 일부 남아 있다. 그러다 보니 역차별 하소연이 많아질 만도 하다. 2009년 로스쿨 입시를 준비하던 남학생 두 명은 정부가 여성에게만 입학 자격을 주는 이대 로스쿨 입학전형을 인가한 것이 남성의 평등과 직업선택의 자유 등 기본권을 침해한다며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그러나 헌법재판소는 지난 5월 “남성이 입학할 수 있는 다른 로스쿨이 여러 곳 있고, 120년 이상 여자대학교로서 정체성을 유지해온 이대가 남학생 입학을 제한한 것은 합헌”이라고 결정했다.

남성보다 뛰어난 ‘알파걸’들이 활개를 치면서 ‘베타보이’들이 기를 펴지 못하는 세상이다. 지난 7월에는 남성 인권 향상을 내건 남성연대 성재기 대표가 공개모금을 위해 자살 퍼포먼스를 벌이다 한강에 투신해 익사체로 발견된 일도 있었다. 알파걸의 진보는 끝이 없다. 일과 능력에서만 남성을 뛰어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 신화의 여전사 아마조네스를 연상시킬 만큼 체력적으로도 강해지고 있다. 오죽했으면 여성 프로축구 6개 구단 감독들이 “남자 선수와 비슷한 체격에 힘과 스피드까지 갖춘 박은선 선수의 성 정체성을 다시 판정해 달라”고 했을까.

최근 연세대 남학생연합이 26일부터 진행되는 연세대 제26대 총여학생회장 선거에서 남학생들도 선거권을 행사하도록 해줄 것을 제안했다고 한다. 지난 6월 건물 처마밑에서 비를 피하던 남학생이 여학생 휴게실 근처에 있었다는 이유로 쫓겨났다는데 초식남의 처지가 애처롭다. 남학생연합이 총여학생회 입후보자의 남성 역차별 해소 확약서 제출 등을 요구했다는데 격세지감이 느껴진다. 차별당하는 초식남, 찌질남 입장에선 우리나라의 성 평등지수가 136개국 중 111위라는 세계경제포럼 발표가 이상하게 여겨지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아랍권보다 못한 성차별 국가라는 소리를 듣지 않으려면 한 명의 알파걸보다 수많은 베타걸들에 대한 임금 차별 등을 없애는 게 관건이다.

이명희 논설위원 mhee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