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태풍 하이옌 후폭풍] 중앙정부 통제력 약하고 돈없어 인프라 미흡

입력 2013-11-12 18:04 수정 2013-11-13 00:44

필리핀 중앙정부는 슈퍼 태풍 ‘하이옌’이 휩쓸고 간 지 사흘째인 12일(현지시간)에도 정확한 사망자 수를 집계하지 못하고 있다. 재난당국은 229명, 군 당국은 942명, 피해 지역인 레이테 주정부에선 1000명 등 공식 발표조차 주체별로 제각각이다. 일각에선 1만명 사망설이 떠돈다.

태풍이 지나간 뒤 한참 동안 허둥대는 모습은 필리핀이 왜 하이옌에 대처하지 못했는지 충분히 짐작하게 한다.

워싱턴포스트(WP)는 필리핀에서 태풍 피해가 왜 이처럼 커졌는지 세 가지로 분석했다.

우선, 돈이 없다. 필리핀은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세계 165위다. 아프리카 콩고민주공화국 바로 밑이다. 지방정부가 넉넉할 리 없다. 레이테 주도인 타클로반의 대부분 가옥과 시설들은 나무로 지어졌다. 기본적으로 태풍에 취약한 구조다.

중앙정부가 태풍에 취약한 지방정부에 인프라를 투입하면 그만이지만 이 역시 필리핀의 정치 체제상 쉽지 않다. 강력한 중앙정부가 없기 때문이다. 필리핀은 지방자치제도가 일찌감치 자리 잡아 중앙정부의 구속 없이 돌아간다. 하지만 지방에 대한 중앙정부의 간섭이 어렵고, 이런 재난이 터졌을 때 특히 통제가 안 되는 것은 큰 문제다.

더욱이 필리핀 중남부 지역은 종교 갈등이 심해 정부군과 반군이 하루가 멀다 하고 충돌하고 있다. 필리핀의 약 80%가 가톨릭이고, 5% 정도가 무슬림이 차지하고 있는데, 반군이 지배하는 무슬림은 주로 남부에 거주하고 있다. 타클로반은 반군 지배지역은 아니지만 남부와 멀지 않아 치안이 불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군의 통제력이 약해 약탈이 끊이지 않아 2차 피해가 속출하는 상황이다.

한편 기상 과학자들은 지구온난화로 인해 슈퍼 태풍이 더 잦아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필리핀은 지정학적인 위치상 1년에 크고 작은 태풍이 20차례가량 발생한다. 11일 폴란드에서 열린 제19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에서 에브 사노 필리핀 수석대표는 “내 조국이 극심한 기후변화로 정신 나간 상황(madness)을 겪고 있다”고 울먹였다. 강대국의 온실가스 감축 부족을 질타한 것이다. 그는 국제사회의 행동을 촉구하며 단식에 돌입했다.

백민정 기자 min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