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생긴 직원들이 “어디 가세요”… 거리모금에 ‘미남계’ 쓰는 구호단체
입력 2013-11-12 17:52 수정 2013-11-12 22:28
“휴대전화 근사하네요. 새로 사셨어요?” “날씨 좋죠? 이렇게 차려입고 어디 가세요?”
지난 9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 말끔한 정장을 맞춰 입은 큰 키의 20대 남성 2명이 지나가는 시민들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일부 여성들은 이들의 수려한 외모에 길을 걷다 흘낏거리며 뒤를 돌아봤다. 이들은 후원자 모집을 위해 거리로 나온 구호단체 직원이었다.
이들의 후원자 거리모집 방식은 이렇다. 먼저 길을 걷는 여성에게 다가가 일상적인 대화를 한다. 잠시 여성이 머뭇거리면 근처에 설치된 부스로 데려가 단체의 활동과 후원 방식에 대한 설명을 시작한다. ‘지지 서명’ 정도만 하면 되는 줄 알았던 여성이 후원금 납입 계약서를 써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손사래를 치면 “잠깐만 더 듣고 가시라”며 양쪽에서 둘러싼다.
이 단체의 부스에서 설명을 듣던 한 여성은 ‘호객행위’ 같은 모습에 놀란 듯 “진짜 그 구호단체가 맞느냐”고 되묻기도 했다. 직장인 정모(34·여)씨는 “좋은 일 하는 기관에서 이런 식으로 후원금을 모집해 당황스러웠다”고 말했다.
구호·시민단체의 후원자 모집 방법이 진화하고 있다. 단순히 길에 서서 종을 울리거나 구호를 외치며 시선을 끌던 과거와 달리 ‘적극적인’ 방법을 쓴다. 일부 단체는 아예 후원자 거리모집을 위해 인력을 고용하고 시선 끄는 법, 자연스럽게 부스로 유도하는 법 등을 가르쳐 내보낸다.
지난 10일 서울 역삼동에서도 비슷한 풍경이 펼쳐졌다. 한 복지단체에서 나온 젊은 남성들이 모자와 옷을 맞춰 입고 같은 방법으로 행인들의 옷깃을 잡아끌고 있었다. 연예인 같은 외모의 이들에게 금방 시선이 쏠렸지만 과도한 호객행위에 눈살을 찌푸리는 시민들도 많았다.
일부 단체의 이런 방식에 찬반이 엇갈린다.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후원자를 더 많이 모집할 수 있다는 점에서 참신하다는 평가도 있다. 실제 지난 9일 광화문광장에는 장애인 후원자 모집 부스도 설치됐지만 반응은 냉담했다. 휠체어를 탄 중년 여성이 “장애인을 도와 달라”고 외치고 있었으나 사람들은 눈길도 주지 않았다. 후원자 모집에 ‘미남계’가 등장한 것도 시민의 관심을 조금이라도 높여보자는 취지에서다.
반면 너무 과도한 모금 행위가 오히려 거부감을 준다는 지적도 있다. 국제 구호단체에서 활동 중인 조상욱(28)씨는 12일 “공신력 있는 단체들이 천박한 방법으로 후원자 모집에 열을 올린다”면서 “후원의 본래 의미는 퇴색된 채 돈만 받아내면 된다는 생각이 팽배하다”고 비판했다.
정부경 기자 vick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