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저 K대에 ‘납치당하게’ 생겼어요.” “뭐라고? 누가 너를 납치한다고?”
서울 강북의 한 고교 진학담당교사 A씨(45)는 11일 학생의 질문에 담긴 ‘납치되다’의 뜻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였다가 제대로 면박을 당했다. 수험생 사이에서 ‘납치되다’는 ‘수능 성적이 기대보다 잘 나왔지만 수능 전 하향지원한 수시모집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지원해놓은 대학에 등록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 은어를 까맣게 몰랐던 A씨는 동문서답을 하고 말았다. 그는 “올해 처음 선택형 수능이 실시돼 가뜩이나 진학지도가 힘든데 가끔 학생들이 학원이나 친구들 사이에서 쓰는 말을 하면 못 알아들을 때가 많다”며 “입시 은어에서도 세대 차이를 느낀다”고 씁쓸해했다.
입시 때마다 생겨나는 생소한 ‘말’ 때문에 일선 진학지도 교사와 고3 담임들이 난색을 표하고 있다. 입시학원에 뒤지지 않으려고 대학별 전형요강을 꼼꼼히 체크하고 스터디그룹까지 만들어가며 진학지도에 온힘을 기울이고 있지만, 이런 ‘입시 은어’ 하나만 못 알아들어도 입시 트렌드를 따라가지 못하는 것처럼 비칠까 걱정된다는 것이다. 교사들은 “(수험생 은어를) 무작정 배우기엔 새로운 게 많아도 너무 많다”고 불평한다.
수험생들이 많이 쓰는 말 중 ‘라인을 잡아주다’는 ‘점수대에 맞는 지원 가능 대학을 제시해주다’란 뜻이다. 수능 가채점을 마친 요즘 가장 많이 쓰이는 말이지만 이를 아는 교사는 많지 않다. ‘특목고나 자율형 사립고 학생들이 수시모집에서 암암리에 비교내신 효과를 누린다’는 뜻의 ‘학교보정’, ‘성균관대 글로벌 경영·경제학과’의 줄임말인 ‘성글경’ 역시 교사들에겐 생경한 말이다.
답답해하긴 수험생들도 마찬가지다. 서울 S여고 3학년 김모(18)양은 “‘납치되다’나 ‘라인을 잡아주다’ 같은 말은 인터넷의 수험생 커뮤니티 몇 군데만 들여다봐도 흔히 접할 수 있는데 금시초문이라는 선생님들을 보면 오히려 이상하게 느껴진다”며 “정시 지원 상담 역시 자주 가던 입시 커뮤니티에서 받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수험생 학부모 이승현(42·여)씨도 “진학담당 교사들의 역할에는 ‘진학’ 업무 외에 ‘소통’도 있다고 본다”며 “학생들과 소통을 원활히 할 수 있도록 입시 트렌드에 조금 더 신경을 써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김수현 기자 siempre@kmib.co.kr
[세태기획] ‘납치되다·학교보정·성글경’ 대입 외계어 난무… 교사들 “느낌 안와”
입력 2013-11-13 03:14 수정 2013-11-13 18: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