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live” 연락두절 한국 선교사 문자 메시지에… 긴급구호팀 “하나님 감사합니다 다른 분들은요?”

입력 2013-11-12 17:40 수정 2013-11-12 20:57


‘눈물의 필리핀’ 구호 현장

“나는 살아 있다(I alive).”

필리핀 세부에서 태풍 피해 긴급구호 대책을 의논하던 기아대책 긴급구호팀 이진호 선교사의 휴대전화에 11일 오후 한 줄의 영문 문자메시지가 들어왔다. 슈퍼태풍 하이옌으로 수만 명이 사망한 레이테섬 북부 타클로반의 사공세현 선교사가 보낸 것이었다.

긴급구호팀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레이테섬 남부에서 활동해온 이 선교사는 태풍이 닥친 직후인 지난 주말부터 이 섬 일대 한국인 선교사들의 생존을 확인하기 위해 사방으로 연락을 하고 있다. 가장 큰 타격을 입은 타클로반 일대는 통신이 두절돼 생사 확인조차 어려운 상황이다. 11일부터 부분적으로 연락이 닿기 시작했는데, 타클로반에서 오랫동안 주일학교 사역을 해온 사공 선교사에게 수차례 문자를 보낸 끝에 이날 오후 간신히 한 줄의 문자메시지를 받았다. 일단 무사하다는 소식만으로도 기뻤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선교사님 가족도 괜찮은가요? 다른 선교사님들은 어떤가요?”

문자를 보냈지만 또 응답이 없다. 다시 통신이 끊긴 것이다. 이 선교사는 이날 밤 배를 타고 레이테섬 릴롱고스 항구로 들어갔다. 직접 선교사들의 안전을 확인하고 긴급구호물품을 전해줄 계획이다. 기아대책 긴급구호팀 한두리 간사는 “물품을 마련해 현장에 전달하는 것도 쉽지 않은 상황”이라며 “비교적 피해가 적은 레이테섬 남부지역에서 물과 식량을 사서 나른다 해도 약탈을 당할 수 있다”고 전했다.

레이테섬의 선교사들은 사공 선교사처럼 문자메시지나 간간이 연결되는 인터넷을 통해 페이스북으로 생존여부만 간신히 전하고 있다. 섬에 가족을 둔 필리핀의 다른 지역 사람들도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세부공항과 항구에는 레이테섬으로 들어가기 위해 몰려온 사람들이 장사진을 이루고 있다. 13일 또다시 태풍이 온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배편은 줄줄이 취소됐고, 비행기는 타클로반 공항의 관제탑 마비로 간간이 오가는 정도다.

비행기로 세부에서 20분 거리에 있는 타클로반 공항에는 반대로 섬을 빠져나가려는 사람들이 끝없이 몰려왔다. 도로도 막히고 차도 다니지 않는데 걸어서 공항까지 와 무작정 기다리고 있었다.

공항에서 만난 한 주민은 “사람들이 바람에 날려가고 항구에 있던 화물선이 부두 위로 떠밀려 올라올 정도로 태풍이 강했다”면서 “당신이 가진 음식을 뺏으려고 당신을 죽일 수도 있으니 시내에 가면 절대 사람들에게 말 걸지 말라”고 당부했다. 시내에는 대부분 상점들이 문을 닫았거나 약탈을 당했고, 아직 치우지 못한 시신들이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어 악취가 진동했다.

12일 현지에서 만난 한국국제협력단(코이카) 단원 곽노을(29)씨도 타클로반으로 들어가기 위해 나흘동안 애를 태웠다고 했다. 2010년 5월부터 타클로반의 산토니뇨 스페트 센터에서 장애 어린이를 가르쳐온 곽씨는 태풍이 상륙하기 직전인 지난 8일 마닐라에서 교육을 받기 위해 섬에서 나왔다. 이날 낮 외교부 긴급대응팀 및 119구조대와 함께 미군수송기를 타고 간신히 타클로반에 도착한 곽씨는 망연자실한 표정이었다.

“아이들이 살던 바닷가 수상가옥이 모두 날아가 버렸어요. 제가 살던 집도 무너졌어요.”

당장 잘 곳이 없어졌지만 아이들과 동료 한국인들 걱정이 더 앞섰다. 곽씨는 “옆집에 살던 차사라 선교사님은 무사하다고 한다”며 “빨리 학교에 가보고 싶다”고 발걸음을 재촉했다. 119구조대도, 기아대책 긴급구호팀도, 코이카와 외교부 직원들도 저마다 서둘러 타클로반 시내로 향했다.

절망과 죽음이 뒤덮은 타클로반에서 “나는 살아있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찾아내기 위한 작업이 시작됐다.

타클로반(필리핀)=글·사진 김지방 기자 fatty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