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김용신] 여덟살의 꿈
입력 2013-11-12 18:44
지난달 열린 이오덕 동요제에서 한 초등학교 1학년 학생이 지은 시다. 제목은 여덟 살의 꿈. ‘나는 **초등학교를 나와서/ 국제중학교를 나와서 민사고를 나와서/ 하버드대를 갈 거다./ 그래 그래서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정말 하고 싶은 미용사가 될 거다.’
피식 웃음이 새어나왔으나 이내 한 학생의 얼굴이 떠올랐다. 나는 서울대에서 말하기 과목을 가르치는데 수업시간에 한 음대생이 이런 얘기를 했다. 엄마의 소망대로 서울대에 합격했으니 이제 음악을 그만두겠다는 것이다. 엄마가 서울대만 들어가면 그 이후부터는 하고 싶은 대로 해도 된다고 했단다. 진정으로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기 위해 부모가 원하고 사회가 요구하는 삶을 일정 정도 살아준다는 나름의 타협안을 세운 것일까.
그래도 이쯤에서 아이를 놓아주는 건 다행일지도 모른다. 성공에 대한 부모의 지긋지긋한 집착 때문에 지금은 어쩔 수 없이 끌려 다니며 공부하고 있지만 보란 듯이 성공하는 순간, 인연을 끊겠다는 아이들도 있다.
‘대한민국 부모’라는 책에 보면 삼수를 시켜 아들을 의대에 보낸 한 엄마의 사연이 나온다. 아들이 초등학교에 다닐 때부터 의사로 만들겠다고 생각한 엄마의 성화에 못 이겨 적성은 무시된 채 의대에 다녔던 아들은 졸업 후 의사 국가고시도 통과하고 나서 엄마와 연락을 끊는다. ‘당신의 아들로 산 것은 지옥이었습니다’라는 문자를 남기고.
아이가 자기답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부모의 일일 것이다.
내 아이가 가진 독특한 ‘결’과 특별한 재능을 잘 알고 있는 부모는 많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과 세상은 내 맘 같지 않을 거라는 불신이 생긴다. 고용도 노후도 불안한 이 험한 세상에서 세상의 잣대로만 우리 아이를 평가할 것 같다.
그럴 때 우리가 아는 방법은 단 하나다. 내가 먼저 믿을 만한 세상이 되어주는 것. 남 따라 살지 않아도 자신을 위한 길을 용기 있게 걷는 특별한 삶을 인정해주는 일이다.
만화작가가 되고 싶다니까 돈도 못 벌고 성공하기 힘들다고 부모가 반대했다는 학생 사연이 들어왔다. 어렵고 고생할 거라는 말, 그래서 하지 말라는 말을 건네는 대신 힘드니까 어려우니까 고생할 거니까 그 일을 해내면 얼마나 특별한 인생을 살게 될지, 얼마나 당당할지 그것을 상상해본다.
김용신 CBS 아나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