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코너-정원교] 중국정치에 비약은 없다

입력 2013-11-12 17:34 수정 2013-11-12 22:04


“경제 개혁의 성과는 정치 개혁이 함께 이뤄질 때 견고해진다. 하루 빨리 정치개혁특구를 설치해야 한다.”

중국 기율검사감찰학원 리융중(李永忠) 부원장은 지난 10일 경화시보(京華時報)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밝혔다. 기율검사감찰학원은 중국공산당 최고 사정 기구인 중앙기율검사위원회 직속으로 기율검사 인력을 양성하는 기관. 경화시보는 공산당 베이징시위원회 선전부에 속한 관영 매체다.

리 부원장은 전국 2800개 현 가운데 1%인 28개 현에서 정치개혁 실험을 한 뒤 성공한 모델을 확산시키는 방안을 제시했다. 반부패제도 전문가인 그는 정치체제 개혁이 이뤄져야 체제 위협 요인이 되고 있는 공직자 부패가 척결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중국공산당 18기 중앙위원회 3차 전체회의(18기 3중전회)를 앞두고 외국 언론들은 이번 회의가 중국 정치 역사상 ‘개혁의 변곡점’이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정치 개혁에 대한 기대도 내비쳤다.

“강철을 단련시키려면 자신부터 강해져야 한다. 우리 당은 시종일관 중국특색 사회주의를 굳건히 끌고 가는 핵심 역할을 해왔다.” 시진핑(習近平) 총서기가 지난해 11월 15일 인민대회당에서 전 세계 언론을 향해 한 말이다. 18기 1중전회에서 총서기로 선출된 직후였다.

“정치체제 개혁은 온당하게 추진해 건전한 인민민주주의를 발전시켜야 한다. 서방 정치제도 모델을 절대로 답습해서는 안 된다.” 후진타오(胡錦濤) 전 총서기는 이보다 1주일 전인 18차 당대회 업무보고에서 이렇게 강조했다.

중국 정치의 한 단면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처럼 18기 3중전회에서 두드러진 정치 개혁 조치가 채택되지 않을 것임은 이미 예고돼 있었다.

최근 한 서방 매체는 ‘시진핑의 권력 장악이 완전하지 못하다’고 썼다. 장쩌민(江澤民), 후진타오 두 전 주석이 시 주석이 추진하는 정책과 인사에 간섭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중국에서 당 원로들이 은퇴한 뒤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은 관례였다.

18차 당대회에서 제시한 정책목표 중에는 ‘샤오캉(小康·의식주 걱정을 하지 않는 물질적으로 안락한 상태) 사회 건설 완성’이 포함돼 있었다. 그 전까지는 샤오캉 사회 ‘건설’이었으나 당시 ‘건성(建成)’으로 처음 바뀌었다. 글자 한 자만 갈아 끼웠지만 의미는 크게 달라졌다.

이처럼 중국공산당은 정치뿐 아니라 경제 국방 외교 등 모든 분야에서 ‘과거와 단절되지 않는 점진적 발전’을 기본 방향으로 삼고 있다.

당 기관지 인민일보가 11일 “개혁은 변화와 안정 사이에 균형을 이루면서 추진돼야 한다”며 ‘온중구진(溫中求進)’을 강조한 것도 이 때문이다. 인민일보는 나아가 ‘중국식 민주주의’가 한걸음 더 진전됐다면서 서구식 민주주의를 거론하는 것조차 차단했다.

다만 중국공산당은 지방법원을 지방 정법위원회로부터 분리시켜 최고인민법원이 직접 지휘토록 하는 방안을 ‘사법권 독립’을 위한 작은 발걸음으로 내세우고 싶어 한다. 하지만 사법권 독립과는 거리가 멀다. 당 중앙정법위가 법원 검찰 공안을 모두 장악하고 있는 시스템을 당장 바꿀 생각은 없기 때문이다.

1980년 광둥성 선전이 중국 최초 경제특구로 지정된 뒤 상하이 자유무역구가 설립되기까지는 33년이나 걸렸다. 경제특구에서는 개방 분야만 제시됐지만 자유무역구에서는 금지되는 영역 외에는 모두 개방되는 게 가장 큰 차이다. 앞으로 언젠가 정치개혁특구가 설치된다 하더라도 금방 대단한 변화가 있을 것으로 기대하면 오산이다.

베이징=정원교 특파원 wkcho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