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끝없는 비리커넥션, 이번엔 방산 마피아인가

입력 2013-11-12 18:44

국방기술품질원이 최근 3년간 납품된 군수품에 대한 전수조사를 실시한 결과 125개 부품의 공인시험 성적서가 위·변조됐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조사 대상 기간이 확대됐다면 훨씬 더 많은 비리가 적발됐을 것이란 점은 불을 보듯 환하다. 원전, 고속철에 이어 국토방위의 핵심인 군수품에서도 시험성적서가 위조됐다니 이제 우리나라는 부품위조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피할 수 없게 됐다.

군납비리가 근절되지 않는 근본 원인은 예산 편성에서 무기체계 결정, 조달과 운용, 감리까지 사실상 군과 군 출신 인사가 독점하는 체제가 굳게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정부의 위탁으로 무기를 제조하는 대기업은 말할 것도 없고 부품을 공급하는 납품업체들도 군 출신인사를 특별 채용해 각종 기밀사항을 빼내는 데 혈안이 돼 있다는 것은 더 이상 비밀도 아니다. 현직에 있는 군 후배들을 상대로 공존 공생하며 거대한 방산 마피아를 구축하고 있다는 말이다.

성능이 제대로 발휘되지 않는 무기는 치명적인 안보 공백으로 직결될 수 있기 때문에 성적서를 위조하는 것은 심하게 말하면 이적행위나 다름없다. 육군의 핵심 전력인 K-1 전차 조임용 부품과 K-9 자주포의 충격 흡수 베어링이 정품이 아니라니 상상이나 할 수 있는 일인가. 북한의 위협이 상존하는 마당에 유사시 이런 첨단 병기들이 제 기능을 못한다면 누가 책임질 것인지 묻고 싶다.

신형무기의 부품공급 상태가 이 모양일진대 더 이상 부품 생산이 중단돼 다른 무기에서 부품을 빼 쓰는 구형무기의 성능은 보지 않아도 뻔할 것이다. 무기뿐 아니라 군 작전의 필수품인 망원경과 사병들의 운동화와 전투복 등도 시험성적을 허위로 작성했다니 할 말을 잊게 한다. 관련자를 엄중 문책하는 것은 물론 최종 납품업체 역시 상응하는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안전이 가장 우선시돼야 할 원자력발전소에 시험성적이 조작된 부품을 사용한 사실이 들통 나 전 국민이 분노와 충격에 빠져 있는 사이 이번에는 군 무기와 장비에도 똑같은 비리가 드러났다. 이제는 특단의 대책을 세워야 한다. 국민의 생명과 국가의 안전을 지켜야 할 분야에까지 비리와 눈가림이 성행하는 나라는 결코 선진국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먼저 모든 무기체계의 원가를 철저히 따져 공개적인 입찰을 실시하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이와 동시에 몇몇 업체가 수년간 독점하는 군납 구조를 과감하게 뜯어고쳐야 할 것이다. 군사보안과 기술노출 등의 위험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장기간 공생관계를 이어온 납품 체제를 개편해야 한다. 원전비리가 특정 대학 선후배끼리 똘똘 뭉친 배타적인 마피아식 문화 때문에 빚어진 참사라는 점을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

우리 사회의 만연된 비리커넥션은 원전, 고속열차, 군수품뿐 아니라 댐이나 항공, 통신, 전기, 가스 등 다른 핵심 국가 기간시설이나 공공시설에 사용한 부품이 온전하지 못할 것이란 의심을 갖게 한다. 정부는 이번 기회에 의심나는 모든 시설을 다시 점검하고 비리가 더 이상 싹트지 못하도록 감사와 확인을 습관화하는 체제를 구축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