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네디 전 대통령 암살 50주년, 미국은 다시 음모론 속으로…
입력 2013-11-12 16:57 수정 2013-11-12 22:37
1963년 11월 22일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암살은 미국인들의 ‘정신(psyche)’에 깊은 상흔을 남긴 사건이었다. 현재 50대 후반 이상의 미국 성인 대부분은 케네디가 암살됐다는 소식을 들은 순간의 충격과 그날 상황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고 한다.
케네디 대통령 암살 50주년이 다가오면서 미국 전역이 반세기의 세월에도 수그러들지 않는 그의 죽음을 둘러싼 미스터리 속으로 다시 빠져드는 분위기다. 하지만 그의 사인을 둘러싼 음모론에 묻혀 ‘대통령 케네디’ ‘정치인 케네디’에 대한 역사적 평가 작업은 지지부진하다는 반성도 나온다. 심지어 ‘인간 케네디는 누구인가’라는 물음조차도 케네디 유족과 측근들이 그에 관한 긍정적 이미지만 대중에게 각인시키려 노력하면서 제대로 답하기 어렵게 됐다는 지적이 있다. 케네디 신화와 진실 간의 간극이 여전히 크게 좁혀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뉴욕타임스 북리뷰는 50년이 지났지만 케네디는 여전히 ‘손에 잡히지 않는다(elusive)’고 했다.
◇다시 케네디 열기=ABC CBS NBC 등 주요 지상파방송은 물론 CNN 등 24시간 뉴스채널도 케네디 대통령 암살 관련 특집방송을 시작했거나 할 예정이다. 주요 뉴스시간대 서거 50주년 관련 보도도 늘고 있다.
케이블 채널들도 앞다퉈 케네디 암살에 대한 다큐멘터리, 드라마 등을 방영한다.
CNN은 17일 톰 행크스가 제작을 맡은 10부작 다큐멘터리의 1부 ‘60년대: 케네디 대통령의 암살’을 방영한다. 내셔널지오그래픽은 10, 12일 드라마 ‘케네디 죽이기(Killing Kennedy)’를 방영한다. 케네디 죽음에 관한 음모론을 파헤친 같은 제목의 베스트셀러 책을 바탕으로 각색했다. 인기 정치드라마 ‘웨스트윙’에 출연했던 로브 로우(Rob Low)가 케네디 역을 맡았다. PBS는 ‘미(未)해결사건 JFK’를 통해 법의학적 시각에서 케네디 암살을 파헤치고, ‘미국인의 경험 JFK’에서 그의 일대기를 다룬다. 보스턴글로브는 시청자들이 이달 어떤 TV채널을 틀어도 케네디를 만날 것 같다고 전했다.
총에 맞은 케네디가 후송된 텍사스주 댈러스의 파크랜드병원을 무대로 케네디 암살 직후의 상황을 담은 영화 ‘파크랜드’도 최근 개봉했다. 케네디 대통령의 죽음에 관한 음모를 다룬 올리버 스톤 감독의 ‘JFK’(1991년)도 뉴욕과 로스앤젤레스(LA)에서 일시 재개봉한다.
50주년을 맞아 관련 역사적 유품이 처음 공개되거나 일반인에게 접근을 허용하는 경우도 잇따르고 있다. 오하이오주 데이튼의 미공군역사박물관은 암살 직후 그의 시신이 실렸고, 부통령 린든 존슨이 대통령 취임 선서를 한 케네디 대통령전용기 투어를 재개한다. 보스턴의 케네디기념관은 22일부터 케네디의 관을 덮었던 성조기와 관을 끌었던 말의 안장 등 장례식 유품을 처음 공개한다.
그동안 보수 작업에 들어갔던 ‘불멸의 불꽃’(Eternal flame)이 케네디 서거 50주년을 맞아 다시 버지니아주 알링턴국립묘지에 위치한 케네디 대통령의 묘지에서 재점화됐다. 워싱턴DC에 위치한 언론박물관 뉴지엄(Newseum)에서는 케네디 대통령 특별기획전이 열리고 있다.
◇‘대통령 케네디’의 유산=케네디의 대통령 재임 기간은 22개월에 불과했다. 정치인 케네디와 대통령으로서의 공과에 대한 관심이 상대적으로 적은 것은 이처럼 재임 기간이 짧은 것과도 연관이 있다. 그에 대한 평가가 주로 그의 실제 업적보다 ‘약속’에 기반해서 이뤄질 수밖에 없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베스트셀러 ‘케네디 50년(The Kennedy Half Century)’의 저자인 버지니아주립대 정치학과 래리 사바토 교수는 정치인 케네디에 대해 높은 점수를 주는 대표적인 학자이다. “케네디는 본질과 형식을 전쟁과 평화, 인권, 우주 등 큰 사안에 관한 지혜와 결합시키는 드문 능력을 갖고 있었다. 할리우드 배우를 뺨치는 외모로 여성들을 사로잡았지만 대통령으로서의 자질도 출중했다”고 말한다. 쿠바 미사일 위기 해결, 베를린 장벽 건설, 우주 탐사, 흑인 민권운동 지지 등은 그의 지도력과 역사의 흐름에 대한 통찰을 잘 보여준다는 것이다.
사바토 교수는 그가 암살되지 않았을 경우 확실히 대통령으로 재선됐을 것으로 예상한다. 모두가 가장 궁금해하는 ‘케네디가 살아남았다면 베트남 전쟁을 어떻게 했을까’라는 물음에 대해 그는 “분명히 케네디도 어느 정도의 개입을 했을 테지만 55만명이나 되는 군사력을 베트남에 투입하는 실책을 저지르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영국 킹스칼리지의 제임스 보이스 박사는 흑인 민권법의 경우 1년여 전에 법안이 제출됐지만 케네디가 죽기 직전까지 남부 출신 공화당 의원들의 반대로 한 치도 진전되지 못했다며 후임 린든 존슨 대통령의 정치적 리더십이 없었다면 의회를 통과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퓰리처상 수상 경력의 저명한 린든 존슨 전기작가인 로버트 카로도 존슨 전기 4권 ‘권력의 이동(The Passage of Power)’에서 공화당 의원들은 흑인 민권법 통과를 대중에게 호소하는 케네디의 순진함을 비웃으면서 철저히 법 통과를 방해하고 있었다며 케네디의 정치력에 의문을 표시한 바 있다.
뉴욕타임스 편집국장인 질 애브램슨은 지난달 27일자 뉴욕타임스 북리뷰에서 ‘케네디는 많은 이들이 믿는 것처럼 위대한 대통령인가, 아니면 무모하지만 매력적인 가벼운 정치인에 불과한가’라는 물음을 제기했다. 그는 이 질문에 대답하기 어려운 데는 동생인 로버트 케네디와 부인 재클린 케네디 등의 비밀주의와 신화 만들기가 큰 몫을 했다고 적었다.
애브램슨 국장은 재클린이 역사학자 윌리엄 맨체스터와 두 차례 가진 각각 5시간 분량의 인터뷰 녹음테이프를 2067년까지 공개할 수 없도록 한 케네디가의 결정을 예로 들었다. 이로 인해 케네디 대통령은 서거한 지 50년이나 됐지만 그의 진면목과 업적을 꼭 집어서 말하기 어려운 ‘손에 잡히지 않는’ 대통령으로 남아있다는 것이다.
워싱턴=배병우 특파원 bwb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