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人터뷰] 이철규 前 경기경찰청장 “신의 영역에 존재하는 듯한 검찰 행태, 위험천만”

입력 2013-11-12 17:16 수정 2013-11-12 22:34


만난 사람=염성덕 논설위원

공직생활 중 두 차례 영어(囹圄)의 몸이 됐다. 정확히 17개월 동안 옥살이를 했다. 다른 공무원 같았으면 단 한 번의 수감생활로 공직을 떠났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는 두 번 모두 재기에 성공했다. 지루한 법정공방 끝에 대법원으로부터 무죄 확정판결을 받은 것이다. 경찰 안팎에서는 그를 보고 부도옹(不倒翁)도 울고 갈 사람이라고 말한다. 경기도 안산서장(총경)과 경기경찰청장(치안정감). 경찰에서 한창 뜻을 펼 시기에 그는 억울하게 자유를 빼앗기고 공직에서 배제됐다고 말한다. 그리고 검찰을 준엄하게 꾸짖는다. 죄도 없는 사람을 엮지 말고 거악을 척결하라고. 이철규 전 경기경찰청장의 이야기다. 이 전 청장을 지난 6일과 10일 두 차례 만나 법정투쟁 전말을 들었다. 그는 검찰의 잘못된 수사관행을 지적할 때마다 유난히 눈과 목소리에 힘을 줬다. 법정투쟁을 통해 생긴 버릇이리라.

-지루한 법정투쟁 끝에 대법원의 무죄 확정판결을 받았다. 소감은.

“지난해 3월 기소된 뒤 20개월 동안 죄인 아닌 죄인으로 살아야만 했다. 당시 신문과 방송에서 연일 검찰이 흘려준 왜곡된 정보를 토대로 보도하는 바람에 재판을 받기도 전에 이미 한 인간의 인격은 무참히 짓밟혀 버렸다. 1·2심 재판에서 무죄를 선고 받았지만 언론은 특별한 논평 없이 단신으로 보도했다. 아직까지 내가 구속 수감된 상태에서 재판 받고 있는 줄 아는 사람도 많다. 검찰의 잘못된 정보 제공과 언론의 오보로 인해 실추된 명예는 회복할 길이 없다. 무죄 확정판결을 받았지만 여전히 씁쓸한 것도 이 때문이다.”

-수사와 재판과정에서 느낀 점은.

“두 가지로 나눠서 이야기하겠다.”

-수사과정부터 말하겠다는 건가.

“그렇다. 검찰은 없는 사실을 있는 것처럼 사건을 몰아갔다. 수사 대상자의 이유 있는 항변을 들어주려고 하지 않았다. 난 공직자로서 떳떳하게 살기 위해 노력했다. 그랬기 때문에 고향 선배(태백시민회장 박모씨)가 주는 격려금 성격의 금품마저도 인간적으로 미안했지만 양심이 허락하지 않아 거절했다. 신의 영역에 존재하는 듯한 검찰의 행태는 정말로 위험천만한 일이다. 검찰의 타깃이 되면 잘못한 것이 없어도 피해를 볼 수밖에 없는 현실에 비애감마저 든다.”

-재판과정에서는 어땠나.

“검찰 수사와 달리 1·2심과 대법원은 공정하고 객관적인 시각으로 접근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명백한 증거와 합리적인 논리에 근거해 재판을 진행했다. 검찰의 잘못된 수사로 희생된 사람의 누명을 벗겨준 재판부에 경의를 표한다.”

-검찰이 수뢰 혐의로 기소한 사례가 몇 건인가.

“모두 7건이다.”

-검찰이 ‘뇌물 공여자’의 진술 말고 증거를 들이댄 적은 있는가.

“없다. 뇌물을 줬다는 사람의 진술도 모두 사실이 아닌 것으로 재판과정에서 드러났다.”

-구체적으로 설명한다면.

“유동천 제일저축은행 회장이 2010년 가을 내 아파트에 와서 수사무마 청탁과 함께 500만원을 건넸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아파트 출입차량 자동판독 시스템에서도 유 회장의 차량이 아파트 단지를 출입했다는 영상이 나오지 않았다. 한마디로 거짓말을 한 것이다. 나와 관련된 유 회장과 공범들의 진술이 모두 이런 식이었다.”

-유 회장이 중·고교 선배인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 유 회장이 왜 후배에게 4차례에 걸쳐 3000만원을 주었다고 진술했다고 보는가.

“중·고교 선배인 것은 맞다. 전화 통화도 하고 지인들과 식사하는 자리에 동석한 적은 있다. 그러나 유 회장으로부터 돈 받은 사실이 없다. 나에게 돈을 주었다고 진술하지 않으면 유 회장의 아들을 구속하겠다고 검찰이 회유 또는 협박하는 방식으로 거짓진술을 유도한 것이다.”

-이런 답변에 책임질 수 있는가.

“물론이다. 유 회장이 ‘후배에게 주지도 않은 돈을 줬다고 진술해 후배가 구속됐는데 죽고 싶다’고 괴로움을 토로한 사실이 재판과정에서 드러났다. 또한 검찰이 재판부에 제출한 구형 의견서에도 ‘유동천 회장의 배임 혐의는 아들 대신 형사책임을 지는 것’이라고 명시돼 있다. 형사책임에는 대위(代位)책임이란 것이 없다. 즉 본인이 지은 죄는 본인이 처벌을 받아야 한다는 말이다. 그러니 아들의 형사책임을 아버지가 질 수는 없다. 그러나 유 회장의 아들은 수사를 받지도 않았고, 기소도 되지 않았다. 검찰이 법대로 형사책임이 있는 사람을 기소해야지, 왜 아들 대신 아버지에게 형사책임을 묻고 정작 형사책임이 있는 아들을 면책했을까. 어차피 유 회장은 다른 혐의로도 처벌을 받아야 하는 입장에서 아들을 구명하기 위해 검찰이 바라는 대로 진술할 수밖에 없지 않았겠나 생각된다.”

-다른 사람으로부터 돈을 받았다가 돌려준 적이 있다고 하던데.

“내가 2010년 충북경찰청장으로 있을 때 태백시민회장 박씨가 찾아왔다. ‘객지에서 고생하는데 직원들 밥이라도 사주라’며 봉투 2개를 던져놓고 가버렸다. 봉투를 돌려주기 위해 계좌번호를 알려 달라고 전화했더니 서운하다며 휴대전화를 끊었다. 그 즉시 청장실 비서를 통해 우편환으로 박씨 집에 송금했다. 이런 사실이 드러나자 박씨는 ‘서울에서 나를 만나 다시 돈을 줬다’고 말을 바꿨다. 그런데 그 진술도 허위인 것으로 밝혀졌다.”

-어떻게 들통 났나.

“박씨가 서울에서 돈을 줬다고 밝힌 날짜가 공교롭게도 2010년 3월 26일이었다. 그날이 어떤 날인가. 북한이 천안함을 폭침시킨 날이다. 경찰에 비상이 걸려 충북경찰청에서 비상대기하고 있었다.”

-일체의 금품을 받은 적이 없다는 말인가.

“그렇다. 다른 사람들과 관련한 저축은행 비리 조사에서 밝혀진 것처럼 ‘돈을 받았는데 대가성이 없다’는 식이 아니라 나는 아예 돈을 받은 적이 없다. 검찰이 누명을 씌우려고 작당하다가 실패한 사건일 뿐이다.”

-검찰과 경찰이 수사권 조정 문제를 둘러싸고 대립할 때 경찰청 정보국장을 맡고 있었다. 당시 전국 정보담당 형사들을 동원해 검찰의 비리와 비위 사실을 수집했다는 첩보도 있었다. 경찰에게 유리한 국면이 전개되도록 활동해 검찰에 밉보였다는 지적도 있는데.

“경찰과 검찰간의 수사체계를 개혁하기 위해 국회에서 수사권 조정안이 논의되고 있었다. 이 과정에서 나는 왜곡된 수사구조를 개선하려고 노력했다. 당시 상황을 아는 사람들은 검찰이 왜 나를 상대로 수사에 착수했는지 잘 알고 있다.”

-검찰이 표적수사를 했다고 보는가.

“당사자인 내가 표적수사 운운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본다. 하지만 재판과정에서 드러난 것처럼 검찰은 해서는 안 될 일을 너무 많이 했다.”

-무슨 뜻인가.

“없는 사실을 만들기 위해 유 회장과 저축은행 관계자들이 진술을 조작하도록 여러 차례 공모할 수 있는 기회를 주기까지 했다. 공범들이 입을 맞추지 못하도록 분리시켜 감시하는 것이 수사의 기본인데도 허구의 이야기를 꾸며내도록 교사 또는 방조한 것이다. 재판과정에서 이런 문제를 지적하자 검찰은 반박도 하지 못했다.”

-저축은행 비리로 기소됐으나 대법원에서 무죄 확정판결을 받은 사람이 여러 명 된다.

“나까지 4명인 것으로 알고 있다. 김두우 전 대통령 홍보수석비서관, 김장호 전 금융감독원 부원장보, 김광수 전 금융정보분석원장이 무죄 확정판결을 받았다. 같은 수사팀에서 4명이나 무죄 판결이 나온 점에 주목해야 한다. 검찰 수사가 얼마나 잘못됐는지 유추할 수 있는 대목이다.”

-검찰 수사가 무리였다고 보는가.

“무리한 정도가 아니다. 수사와 재판과정에서 경험한 바로는, 적어도 나에 대한 수사만큼은 특정인에게 죄를 덮어씌우려고 기획한 수사로밖에 볼 수 없다.”

-재판과정에서 유 회장과 관련된 검찰 간부가 4명이라는 이야기가 거론됐다는데.

“공판정에서 변호인이 유 회장의 공범을 상대로 검찰 간부들과 유 회장의 관계에 대해 증인심문을 하려고 하자 검찰이 수사 중인 사건이라는 이유로 증인심문을 막아 달라고 재판부에 요구해 제대로 밝혀내지는 못했다.”

-정신적인 고통이 컸을 것 같은데.

“지난해 8월부터 올해 봄까지 전문기관에서 심리상담을 받았다. 상담사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참담한 마음을 조금이나마 추스를 수 있었다. 사람이 벽을 만나면 극단적인 생각을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까지 했다. 산전수전 다 겪고 경찰 고위직에 오른 나도 검찰의 잘못된 수사로 인해 이런 고통을 당했는데, 평범한 사람이라면 오죽했겠느냐는 생각이 들었다.”

-변호사 선임 비용을 포함해 경제적 손실도 많지 않았나.

“옛말에 송사에 휘말리면 집안이 거덜난다고 했다. 부담이 없었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경제적 손실은 내가 잃어버린 명예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검찰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공권력 남용과 오용의 피해는 상상을 초월한다. 그 폐해는 말로 다 설명할 수 없다. 수사를 받는 사람이 인권침해를 당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잘못된 예단을 갖고 옭아매려는 수사를 자행해서도 안 된다. 검찰 조직은 물론 검사 개개인도 신이 아닌 이상 오류를 범할 수 있다고 본다. 수사과정이든, 재판과정이든 오류가 발견되면 스스로 바로잡을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이미 시작한 수사인데 무죄가 나면 큰일 나는 것처럼 유죄를 만들기 위해 허위진술을 유도하는 일은 그만둬야 한다.”

-이전에도 수뢰 혐의와 관련해 무죄 확정판결을 받은 적이 있다.

“경기도 안산서장으로 근무하던 2001년의 일이다. 안산시장 측에 건넨 뇌물이 안산서장에게 준 것으로 조작된 사건이었다. 1·2심에서 징역 3년형을 받았으나 대법원이 파기환송했고, 결국 무죄 확정판결을 받았다. 당시 뇌물 공여자는 검찰이 ‘안산서장에게 뇌물을 줬다고 허위진술을 하라’고 강요하는 바람에 대학병원의 정신과 치료까지 받았다. 이런 내용이 들어 있는 진료기록이 나중에 공개됐다. 뇌물 공여자가 안산시장 비서에게 1억원을 준 사실이 재판과정에서 밝혀졌지만 검찰은 그 비서를 기소하지 않았다. 그 비서가 법정에서 수원지검장을 거론한 적이 있는데, 이런 이유 때문에 기소하지 못한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이런 정황이 허위라면 검찰은 나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하든, 수사하든, 기소하든 (마음대로) 해라. 내 사건을 수사한 검사는 건설업자로부터 2000만원을 받은 혐의로 기소돼 유죄선고를 받았다. 또 내 사건을 지휘한 지청장은 검사장으로 승진했으나 불미스러운 일이 드러나 평검사로 강등됐고, 아직까지 검찰에 남아서 근무하고 있다. 이런 자들이 사건을 조작한 것이었다.”

-경찰 신분을 유지한 채 재판을 받았다. 이런 경우는 매우 이례적인데.

“지난해 3월 기소되면서 경기경찰청장직에서 물러났다. 일단 기소되면 직위해제 사유가 된다. 그 후 총리실 중앙징계위원회가 두어 차례 열렸으나 법원 판결을 보고 결정하자고 결론을 내렸다. 지난 6월 2심에서 무죄판결을 받자 중앙징계위가 무혐의 처분을 했다.”

-복직은 가능한가.

“나는 검찰에게 밉보였다는 것 외에는 어떤 잘못도 없이 구속 기소되고 중앙징계위에 회부됐다. 그러나 사필귀정이라고 모든 혐의를 벗었다. 현재 정부의 후속 조치를 기다리고 있다. 상식의 범주를 넘어서지 않는 조치가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내 개인만의 문제가 아니다. 모든 공직자들에게 나쁜 선례를 남기지 않도록 의연하게 처신하겠다. 국민의 신뢰와 사랑을 받는 경찰이 되도록 하는 데 마지막 열정을 쏟고 싶다.”

-일선 경찰에 당부하고 싶은 말은.

“경찰은 법 집행의 최일선에서 활동한다. 수사는 법이 허용하고는 있지만 체포, 압수, 수색 등 현실적으로 인권을 침해하는 행위를 수반한다. 인간은 신이 아니다. 그러므로 예단과 추측으로 국민의 인권을 침해하는 일이 없도록 명심해야 한다. 무리한 수사로 국민의 인권을 침해한다면 존재가치를 잃게 될 것이다.”

-경찰청공무원노동조합이 성명을 발표했다. 직위해제된 경찰 최고위 간부를 복직시키라는 성명 내용이 이례적이다.

“가슴이 뭉클했다. ‘무죄 판결을 받았다고 해서 (이철규 치안정감이) 개인의 명예를 회복한 것이 아니다. 원직 복직만이 진정한 명예회복의 길이다. 이는 이철규 개인에 관한 것이 아니라 경찰 조직의 명예회복에 직결된 것인 만큼 경찰 수뇌를 비롯한 전 조직 차원에서 적극적인 대책 마련에 나서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동료 직원들의 성원에 깊은 감사를 드린다. 큰 시련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이 됐다.”

-퇴직 이후에는 무슨 일을 할 것인가.

“이전에는 경찰학과가 개설된 지방대학에서 미래의 경찰에게 공직 경험을 전수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이번 일을 겪으면서 불합리한 제도와 관행을 개혁하는 일에 나서는 것을 깊이 고민하고 있다.”

李 전 청장은

△강원 동해(56) △한양대 행정학과 △명지대 대학원 법학박사 △순경 △간부후보생 29기 △98년 정권인수위 근무 △송파서장 △경찰청 외사기획과장 △강원경찰청 차장 △서울경찰청 경무부장 △경찰청 교통국장 △충북경찰청장 △경찰청 정보국장 △경기경찰청장 역임

염성덕 논설위원 sdyu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