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책없는 野본질 외면 與… 부끄러운 정치권의 민낯
입력 2013-11-11 18:14
민주당이 인사청문회를 제외한 다른 국회 상임위원회 활동을 11일부터 3일간 중단키로 하면서 민생 법안 및 예산안 처리에 빨간불이 켜졌다. 국가기관 대선개입 의혹에 대해 모르쇠로 일관하는 여당, 툭하면 국회를 볼모로 잡는 야당의 정치력 부재가 가져온 정치 실종의 부끄러운 현실이다. 국회 본연의 책무를 저버렸다는 점에서 일차적으로 민주당 책임이지만 사태를 악화시킨 새누리당 역시 매서운 국민적 비판을 피할 수 없을 전망이다.
민주당이 지난 8일 하루짜리 보이콧에 이어 다시 3일간 보이콧 카드를 빼든 이유는 새누리당이 국가기관 대선개입 의혹 일체에 대한 ‘원샷 특검’ 및 ‘국가정보원 개혁특위 설치’를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단 3일에 불과한 보이콧이지만 시사하는 바는 크다. 우선 오는 15일까지 예정됐던 결산심사는 파행이 불가피하다. 여야가 ‘새누리당 특검 거부→민주당 상임위 보이콧→결산심사 파행→예산안 연내 처리 실패(?)’로 가는 수순을 밟고 있는 것이다. 미국 연방정부의 ‘셧다운’ 사태처럼 우리도 헌정 사상 초유의 준예산 편성 사태에 직면할 수 있다는 우려다. 민주당이 ‘특검을 못 받겠다면 받아주게 만들겠다’는 식의 벼랑 끝 전술을 구사하고 있는 것이다.
민주당은 특검을 고리로 다른 야당 및 재야세력과 연대하는 ‘국가기관의 선거개입 진상규명과 민주헌정질서 회복을 위한 각계 연석회의’를 통해 언제든 장외로 나갈 수 있다는 배수진도 치고 있다.
그러나 이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거세다. 민주당 박지원 전 원내대표는 “박근혜정부를 향한 강경 투쟁은 필요하지만 의원총회도 없이 국회를 보이콧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국회는 야당의 가장 강력한 투쟁 장소”라고 밝혔다. 당 지도부가 지난 8일까지만 해도 하루만 보이콧한다는 전략을 세웠다가 주말 사이 전략을 바꾸자 장기적인 전략이 없다는 비판도 나온다.
청와대와 새누리당은 사실상 뒷짐만 지고 있다. 박 대통령은 침묵하고, 새누리당이 타협과 협상을 이끌어내기는커녕 민주당과 소득 없는 말싸움을 하면서 여야 간 갈등의 골만 넓히고 있다. 청와대 정무수석은 존재감이 없다.
지난 3월 정부조직법 처리 과정에서 보여준 무능한 여당의 모습이 연말까지 지속되고 있다는 당내 비판도 적지 않다. 새누리당 지도부는 “민주당이 받아줄 수 없는 주장만 늘어놓고 있다”고 불만을 토로하지만 중진 의원들은 여당이 야당을 적절히 포용하지 못하면 정당정치가 힘들다고 공통적으로 지적하고 있다.
새누리당의 한 3선 의원은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여야는 대화만이 살길”이라며 여야 간에 의미 있는 대화가 이뤄지지 못하는 현실을 질타했다. 새누리당과 민주당은 당 대표, 원내대표 및 원내수석부대표 등이 수시로 채널을 동원해 물밑접촉을 하고 있지만 국회 파행을 막기에는 역부족이다. 여야에 두루 몸담았던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은 최근 국회 심포지엄에 참석해 “한국 정치는 실종 상태”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엄기영 유동근 기자 eo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