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놀음으로 현실 오도?… 복지부 부풀리기 의도 있나

입력 2013-11-12 05:28


국민일보가 지난달 30일 ‘국민연금 용돈연금 전락 우려’라는 제목의 기사(1, 3면)를 내보낸 이후 몇몇 전문가들로부터 “수치가 이상하다”는 전화가 걸려왔다. 기사는 ‘40년 가입 소득대체율 40%’를 내건 국민연금이 짧은 가입기간 때문에 실제로는 목표치 40%에 한참 못 미치는 26∼27%의 소득대체 효과에 그칠 거라는 내용이었다. 정부가 반복해서 강조해온 40% 소득대체율은 ‘명목’일 뿐 적어도 향후 50년간 ‘실질’ 소득대체율은 이보다 훨씬 낮을 것으로 예측된다는 것이다. 20% 중반은 국민연금 가입자들에게는 충격적으로 낮은 수치였다. 그런데 연금 전문가들은 이 숫자조차 “너무 높다”고 의아해했다. 한 전문가는 “내가 아는 한 보건복지부 내에서 통용되는 실질소득대체율은 10%대인데 20%를 넘는다는 게 이해되지 않는다. 이 수치가 정말 맞느냐”고 되물었다.

◇40년 만에 두 배나 부자가 되는 ‘숫자의 마법’=정부 발표를 보면 장기적으로 국민연금 수급자의 평균 가입기간은 20년 정도(그래픽 1)에 불과하다. 정부가 선전해온 ‘국민연금 명목소득대체율 40%’는 ‘40년 가입하면 40%를 채워준다’는 것이다. 목표치(40년)의 절반(20년)만 가입했는데 어떻게 30%에 가까운 연금액을 받게 되나. 의문은 여기서 출발한다.

국민연금연구원이 민주당 이언주 의원에게 최초 제공한 A4 용지 한 장짜리 국감자료는 연도와 실질소득대체율 수치만 있을 뿐 중간 과정은 전혀 없었다. 산식을 보여주는 추가 자료를 받아 확인해보니 숫자가 드라마틱하게 증가하는 구간이 드러났다.

예를 들어 2013년에는 63세 13만명이 약 48만원의 연금을 받는다. 이걸 이들이 일할 때 받은 월평균 임금(205만원)으로 나누면 실질소득대체율(23%)이 나온다. 7년 뒤인 2020년 이 집단이 70세가 될 때 실질소득대체율은 물가인상률이 적용된 연금액(59만원)을 2020년 현재가치로 환산한 평균임금액(205만원+α)으로 나눠야 나온다.

하지만 그래픽 2에서 확인할 수 있듯 정부는 평균임금액은 고정시킨 채 연금액만 물가에 따라 계속 올리는 ‘특이한’ 방식을 택했다. 연금액만 지속적으로 오르다 보니 63세 때는 23%에 불과했던 실질소득대체율이 100세가 되면 56%까지 치솟는다. 물가 인상에 따라 조금씩 더 많은 연금액을 받았을 뿐인데 동일 집단이 통계상으로만 두 배로 부유해진 것이다. ‘숫자의 마법’이다.

이를테면 2030년 연금을 받게 되는 A씨의 연금 액수가 100만원이고 퇴직 전 월평균 소득이 2013년 기준 200만원, 2030년 기준 500만원이라면 2030년 실질소득대체율은 100만원을 200만원으로 나눈 50%가 아니라 500만원으로 나눈 20%가 돼야 한다. 정부는 이걸 50%로 계산한 것이다.

◇가입자들 헷갈리게 하는 숫자놀음=국감자료의 통계 오류에 대해 국민연금연구원 담당 실장은 “물가인상률을 반영하는 걸 잊었다. 전적으로 담당자와 감수자인 나의 실수”라고 해명했다. 실수라는 연구원 주장에 반박할 방법은 없다.

하지만 이상한 건 지난봄 국민연금 제도발전위원회에 보고된 실질소득대체율과 국감자료 사이에도 꽤 큰 격차가 존재한다는 점이다. 위원들이 “복지부 허가 없이 외부 유출은 어렵다”며 공개를 거부한 내부 보고용 자료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2050∼2060년 실질소득대체율은 22% 정도에 불과하다. 국감자료보다 4∼5% 포인트 낮은 반면 이번에 오류를 수정한 수치와는 유사하다.

담당자는 “당시(제도발전위 보고 때) 수치는 물가상승률을 반영한, 제대로 된 추계였으며 실수는 이번에만 일어났다”고 말했다. 불과 7∼8개월 전 내부 토론용으로 산출한 수치보다 4∼5% 포인트 높은 통계를 복지부 보고까지 거쳐 국감에서 공개한 것이다. 그 사이 국민연금연구원과 복지부 담당자는 바뀌지 않았다.

이 때문에 정부가 비전문가들은 이해하기 어려운 복잡한 수치 산출 과정을 이용해 일종의 의도적 실수를 한 것 아니냐는 의심도 나온다. 실질소득대체율은 국민연금 가입자에 대한 모든 정보를 보유한 정부만이 산출하고 확인할 수 있는 통계다.

“수치가 너무 높다”고 의문을 제기했던 중앙대 김연명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실수이든 오류이든 정부 통계를 믿을 수 없다면 그걸 토대로 설계된 정책의 진정성도 의심받게 된다. 이 기회에 모든 정보가 투명하게 공개되길 바란다”며 “더불어 부풀려진 실질소득대체율을 전제로 설계된 기초연금안에 대한 전면적 재검토를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영미 기자 ym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