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가요 홀대 말라” 화난 가수들 거리로
입력 2013-11-11 18:10
“140곡 중 15곡은 넣어 주셔야죠!”
서울 최저기온이 올가을 처음 영하로 떨어졌던 11일 서울 등촌동 TJ미디어 사옥 앞 인도에 한껏 멋을 낸 중년 남녀 200여명이 모였다. 중절모에 말끔한 정장을 갖추고 무스탕 재킷에 선글라스를 걸친 이들은 전국연예예술인노조 소속의 트로트 가수들. 손에는 ‘피땀 흘려 노래 만든 선생님들 지하에서 통곡한다’ ‘국민 정서 앞장선 성인가요 홀대가 웬말이냐’ 등의 문구가 적힌 피켓이 들렸다(사진). 트로트 가수들이 집단시위를 벌인 건 이례적이다. 이들의 요구는 노래방 신곡 리스트에 트로트로 대표되는 성인가요를 좀 더 넣어 달라는 것. TJ미디어는 노래방 장비 시장의 30%를 점유하고 있다.
노래방 기계마다 신곡 입력 건수는 매달 140여곡으로 제한돼 있다. 이 중 성인가요는 평균 10곡 정도다. 트로트 팬의 비율로 따지면 15곡까지는 들어가야 한다는 게 가수들 입장이지만 노래방 기계 업체는 난색을 표한다. 인기곡이 많은 기계를 노래방 업자들이 선호해 젊은 층이 즐겨 들어 유명세를 탄 신곡 위주로 편성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TJ미디어 관계자는 “방송 횟수, 이슈 생성 여부, 온라인에서 재생된 로그 기록 등 여러 데이터를 조합해 선곡한다”며 “소비자가 선호하는 곡을 제공해야 손해 보지 않는다”고 전했다.
반면 가수들은 지금의 노래방 기계 회사들을 키운 건 성인가요라고 주장한다. 10여개 노래방기계 회사들이 우후죽순 생겨났던 1980∼90년대엔 정식 앨범에 수록되지 않은 트로트 메들리까지 앞다퉈 수록했다. 노래방 업자들이 수록곡이 많은 기계를 선호해 한 곡이라도 더 실으려는 경쟁이 치열했기 때문이다. 이런 시기를 거쳐 소규모 회사들이 정리됐고 끝까지 살아남은 건 TJ미디어와 금영미디어 두 곳이라는 것이다.
집회에 참가한 작사가는 “노래방 기계 회사가 서민의 문화예술인 성인가요의 쇠퇴를 부추기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가요작가협회 이동훈 수석부회장은 “20년 전만 해도 업체 측이 메들리까지 넣겠다고 졸라대 귀찮도록 서명해줘야 했다”며 “저작권 개념도 뚜렷하지 않던 시절 성인가요를 발판 삼아 회사를 키우더니 이제 외면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전수민 기자 suminis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