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X까 XX아’ 노래 들으면 공부 스트레스 싹∼ 인터넷 ‘욕설 랩’에 빠진 10대들

입력 2013-11-12 05:43


‘칼빵(칼로 몸에 상처를 내는 것)하고 싶은데 억지로 참는 내 욕구.’

조직폭력배나 할 법한 이 말이 노래 가사에 등장한다. 다른 노래는 ‘존X’ ‘X까 XX아’라는 등의 욕설로만 채워져 있다. 인터넷 카페를 통해 유통되는 네티즌 자작곡의 실태는 이렇다. 정규 음원이 아닌 탓에 심의도 받지 않는다. 차마 입에 담기 힘든 욕설과 은어로만 이뤄진 노래들이 청소년 사이에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고등학생 김모(18)군은 공부 스트레스가 심해질 때마다 힙합 리듬의 노래를 듣는다. 김군이 주로 듣는 건 정규 음원으로 발매된 곡이 아닌 이름 모를 랩이다. 힙합 마니아나 래퍼를 꿈꾸는 이들이 인터넷에 올리는 노래인데 욕이나 선정적 표현이 자주 등장한다. 김군은 “욕이 나오는 랩을 들으면 왠지 속이 시원하다”며 “음원 사이트에서 정식 다운받는 노래들은 욕이 다 나오지 않고 ‘삐’ 소리로 가려지거나 원래 가사가 수정돼 답답하다”고 말했다.

11일 한 포털사이트에 개설된 힙합 음원 사이트에서는 과격한 단어로 가득한 랩 가사들이 쉽게 검색됐다. 일반인들이 랩 가사를 직접 써서 올리는 ‘자작랩’ 게시판에는 노골적 성(性) 묘사와 욕설이 가득했다. 가사는 ‘거리를 걷는 여자 옆 꼬마가 내 사생아’라는 식이거나 나체로 집안을 돌아다니는 모습을 적나라하게 묘사한다. 카페 운영자가 ‘화투’ ‘텐프로’ ‘성인용품’ 등의 금칙어를 적어놓긴 했지만 이는 가사가 아닌 광고 글을 막기 위한 임시 조치일 뿐이었다.

청소년들은 포털사이트 카페에 가입하기만 하면 쉽게 이런 음악에 접근할 수 있다. 통상 이런 음악이 정규 음원일 경우 여성가족부 음원심의를 거쳐 ‘청소년 유해 등급’으로 판정된다. 가사에 ‘술’ ‘담배’ 등의 단어만 들어가도 청소년 유해등급이 될 정도로 음원 심의는 까다롭다. 그러나 정규 음원이 아닌 이런 곡들은 심의 주체도 없다. 카페들이 모두 회원제로 운영돼 외부에서 감시하기도 쉽지 않다. 이 때문에 이런 퇴폐 음악이 청소년 사이에서만 암암리에 퍼져나가고 있는 것이다.

여성가족부 청소년매체환경과 관계자는 “정식 등록돼 판매되지 않는 음원의 경우 심의 대상이 아니다”고 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역시 “음원은 예술성이 고려되기 때문에 단순히 유해매체로 지정하기 어렵다”며 “여가부에서 청소년 유해매체 등급이 내려져야 접근 금지 조치를 할 수 있지만 개인이 인터넷에 올리는 가사까지 심의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김유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