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이흥우] 가장 강한 바람

입력 2013-11-11 17:57

여름에 나무꾼이 나무를 할 때 이마의 흐른 땀을 씻어주는 산바람, 사공이 배를 젓다 잠이 들어도 저 혼자 나룻배를 저어주는 강바람은 좋은 바람, 고마운 바람이다. 봄의 불청객 황사바람은 나쁜 바람, 고약한 바람이다.

작가 조제웅은 ‘좋은 바람’ ‘나쁜 바람’ ‘세고 정말 나쁜 바람’ 세 가지 바람이 있다고 노래했다. “좋은 바람은 내가 더울 때 시원하게 불어주고, 빨래를 잘 말려주고… 나쁜 바람은 점수가 좋은 시험지를 어디론가로 날려버린다. 그리고 세고 정말 나쁜 바람은 간판이랑 나무와 사람들을 날려버린다.”

바람은 발생 장소, 시기, 강도에 따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종류가 많다. 높새바람 하늬바람 갈마바람 고추바람 된마파람 된새바람 마칼바람 살바람 소소리바람 왜바람 피죽바람 건들바람 강쇠바람 댑바람 등 일일이 열거하자면 숨이 찰 지경이다. 이렇게 수많은 바람 가운데 기상청이 예보용으로 사용하는 바람은 실바람, 남실바람, 산들바람, 건들바람, 흔들바람, 된바람, 센바람, 큰바람, 큰센바람, 노대바람, 왕바람, 싹쓸바람(강도가 약한 것부터 강한 순) 12개다. 이 중 노대바람, 왕바람, 싹쓸바람이 태풍급에 해당한다.

태풍(颱風)이란 말은 17세기에 처음 등장한다. 1634년 중국에서 ‘복건통지(福建通志)’를 간행할 때 처음 사용했다고 한다. 그전에는 구풍(?風)이라고 불렀는데 영어로 태풍을 뜻하는 ‘typhoon’은 구풍의 광둥어 발음에서 유래했다. 태평양 남서부에서 발생하는 최대 초속 25m 이상의 강한 열대 폭풍을 일컫는 태풍은 매년 27개꼴로 발생한다. 7∼10월에 집중적으로 발생하나 11월에도 7월(4.0개) 다음으로 많은 2.6개의 태풍이 몰아친다.

제30호 태풍 ‘하이옌(海燕·바다제비)’이 지난 9일 필리핀 중부를 강타해 막대한 인명 및 재산피해를 냈다. 하이옌의 순간 최대풍속은 379㎞/h로 1969년 미국 미시시피에 상륙한 초대형 허리케인 ‘카밀’과 80년 ‘앨런’의 세계기록 304㎞/h를 깼다. 기상관측 사상 가장 강력한 태풍이다. 2005년 미국 남부 지방을 초토화시키고 1800여명의 인명피해를 낸 허리케인 ‘카트리나’의 순간 최대풍속이 205㎞/h였던 것과 비교할 때 하이옌의 위력을 실감할 수 있다.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인간이 자연을 정복할 순 없다. 지구온난화 등 자연을 거스른 인간의 오만이 이 같은 대형 참사를 부른 게 아닌지 그게 걱정이다.

이흥우 논설위원 hw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