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 핵심 부품도 시험성적서 조작] 30년 눈 감은 軍, 군납비리 키웠다
입력 2013-11-11 18:02
국방기술품질원(기품원)이 11일 발표한 군수업체들의 시험평가서 위·변조 행태는 군의 고질적인 문제로 지적돼온 군수비리가 근절되지 않고 있을 뿐 아니라 이를 철저히 감시·감독해야 할 기관마저 부실한 관리를 해 왔음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기품원이 자체 조사한 결과로 나온 위·변조 사례가 이 정도라면 외부기관에서 조사할 경우 더 많은 비리들이 터져 나올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기품원은 이번에 비리가 드러난 업체들이 모두 단독으로 했다고 설명했지만 조직적인 위·변조가 이뤄졌을 수도 있다. 일각에서 이번 조사결과를 ‘빙산의 일각’이라고 보는 이유이다.
◇부실한 관리실태=군에 납품되는 식품과 피복류, 각종 무기류 부품들의 품질은 엄격한 조사와 시험평가를 거쳐 기준을 충족시켜 성능은 제대로 발휘되는지가 확인돼야 한다. 병사들의 생활과 생명은 물론 자칫하면 전쟁시 작전수행에 치명적인 오류가 발생할 수 있어서다.
하지만 군(軍)은 지난 30여년간 이들 품목에 대한 공인시험성적서 위·변조여부를 한 번도 검사하지 않았다. 이들 품목에 대한 검사를 책임지고 있는 기품원도 2006년 설립된 뒤 올해 처음 검사를 실시했다. 그동안에는 군수품 납품업체가 제시한 시험성적서를 그대로 수용했다. 군사전문가들은 “이윤추구를 목적으로 하고 있는 기업이 스스로 엄정하게 기준을 준수할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무리”라며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꼴”이라고 비판했다.
그간 군수품 가운데 핵심 성능과 고위험도 제품에 대해서는 기품원이 직접 품질관리하거나 국가공인기관이 관리를 해 왔다. 예를 들면 사격시험은 국방과학연구소(ADD)에서, 방탄시험은 육군사관학교에서, 화생방시험은 국군 화생방 방호사령부에서 실시해 왔다. 이번에 비리가 드러난 것은 상대적으로 단순하고 위험도가 낮아 계약업체에 시험평가를 위임한 품목들이다. 이런 품목들은 의뢰업체와 시험기관 사이에 자료가 오가고, 결과만 기품원에 팩스 등으로 통보하게 된다. 한 방산관계자는 “시험기관은 돈을 지불하는 업체의 편의를 봐주지 않겠느냐”며 비리발생소지가 크다고 지적했다. 시험기관 관계자들과 업체 간 유착관계를 맺고 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시험기관 관계자들 가운데는 군 출신도 있어 이들을 고리로 ‘비리의 사슬’이 연결됐을 가능성도 높다.
또 비리를 저지른 업체들에 대한 제재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방위사업청은 뇌물과 입찰담함 등의 비리사실이 적발되면 부적당업체로 분류해 제재처분을 한다. 일정기간 정부의 모든 입찰에 참가할 수 없다. 하지만 업체들은 ‘입찰참가자격 제한처분 집행정지’ 등 법적인 조치로 시간을 벌어 재입찰을 하거나 상호를 바꿔 마치 다른 회사인 것처럼 속인 뒤 입찰에 참여하는 경우가 비일비재다.
◇무기체계 부실로 이어지나=기품원 관계자는 “현재까지는 위·변조 품목들로 인해 장비가동 중단이나 운용에 불만은 없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금은 문제가 없어도 장비의 내구도와 신뢰도에 악영향을 끼쳐 결정적인 시점에 성능이 제대로 발휘되지 않거나 큰 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다. 높은 정밀도를 요구하는 무기류의 경우 작은 나사 하나가 잘못돼 가동이 중단되기도 한다. 무기전문가들은 “첨단 무기류는 수만개의 부품이 들어가기 때문에 단 하나에서 이상이 발생해도 자칫 무기 자체를 못 쓰게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최현수 군사전문기자 hscho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