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박항식] 국가의 혁신역량 키우려면
입력 2013-11-11 17:41
‘초미지급(焦眉之急)’. 눈썹에 불이 붙은 것과 같이 몹시 위급함을 이르는 말이다. 중국 송(宋)나라 고승인 불혜선사가 이 세상에서 가장 다급한 경지가 무엇인지를 묻는 제자의 물음에 답한 말이라고 한다. 현재 우리나라 상황을 이와 비교한다면 지나친 것일까.
대한민국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식민지 국가 중 유일하게 국민소득 2만 달러를 넘어섰으며 원조 수혜국에서 원조 공여국으로 눈부시게 발전했다. 그러나 지금 우리의 사정은 그다지 녹록하지 않다. 노동과 자본 등 생산요소 투입 의존형 성장 전략이 한계에 다다랐고, 저출산 고령화 등으로 향후 잠재성장률은 3%대를 밑돌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 20년간 일본이 겪은 장기 침체에 빠질 수 있다는 신호가 곳곳에서 들려온다.
중국은 급성장한 과학기술 및 산업경쟁력을 바탕으로 우리를 맹추격하고 있다. 한·중 간 기술격차는 2012년 기준 1.9년 앞선 것으로 나타났지만 2008년 2.7년, 2010년 2.5년에 비하면 빠르게 당겨지고 있다. 항공·우주 분야는 오히려 우리가 4.5년 뒤진 것으로 조사됐다. “과학기술은 제일의 생산력”이라고 했던 덩샤오핑부터 현재의 시진핑까지 중국 최고지도층은 과학기술 발전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행동으로 실천하고 있다.
또한 양탄일성(兩彈一星·원자탄 수소폭탄 인공위성)으로 대표되는 세계적 수준의 기초과학 기술을 바탕으로 자주창신(自主創新)을 발전 목표로 제시해 탈추격형 과학기술 전략을 빠르게 추진하고 있다. 연구·개발 투자 또한 막대하다. 2012년 연구·개발 투자액은 총 1조 위안(약 180조원)으로 우리나라의 3배 이상이며 2022년에는 미국을 제치고 세계 1위의 연구·개발 투자국이 될 것으로 예측된다.
일본의 경우 더욱 적극적이다. 1990년 이후 제조업 분야의 경쟁력이 약화되어 삼성전자 사례에서 보듯 일부 제조업 분야에서는 우리나라가 일본을 앞지르고 있다. 그러나 과학기술 경쟁력은 여전히 우리나라를 압도한다. 2012년 국가과학기술혁신역량평가(COSTII)에 따르면 한국은 9위인 반면 일본은 3위로 조사됐고,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의 2013년도 세계경쟁력 연감의 과학 인프라 순위는 6년 연속 미국에 이어 2위를 차지하고 있다.
여기에다 아베 신조 총리는 지난해 말 취임 이후 무제한 금융완화와 재정지출 확대로 대표되는 ‘아베노믹스’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실질경제성장률은 증가세로 돌아섰고, 고용 사정이 개선되는 등 뚜렷한 경제 회복세를 나타내고 있다. 일본의 급격한 재부상에 한국은 주력 산업의 수출 부진과 경쟁력 약화를 걱정해야 할 형편이다.
1997년 IMF사태 직전 외국의 한 컨설팅 회사는 한국을 넛크래커(Nutcracker)에 끼인 호두에 비유하며 비용의 중국과 효율의 일본 사이에서 깨질 수밖에 없는 운명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우리는 반도체, 휴대전화 등 세계 최고의 IT 기술로 대표되는 기술경쟁력을 배경으로 보란 듯 위기를 극복해냈다.
16년이 흐른 지금 더 위협적인 상황에 직면한 우리나라는 ‘창조경제’로의 새로운 경제 패러다임 전환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과학기술과 ICT 융합을 통해 국가 혁신 역량을 총결집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정부 주도만의 대응으로는 한계가 있다. 기업들의 적극적인 노력과 국민들의 관심과 지지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정부와 기업, 국민의 3박자 노력이 요구된다.
박항식 미래창조과학부 과학기술조정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