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을새김-서완석] 한국 골프 어떻게 할 것인가

입력 2013-11-11 17:40


14세기 지금의 네덜란드와 벨기에 지역에서는 골프와 유사한 운동인 ‘콜프’를 주말에는 금지하는 칙령이 반포된 적이 있다. 주민들이 콜프에 빠져 주일에 교회에 출석하지 않는다는 성직자들의 지적 때문이었다. 스코틀랜드 국왕 제임스 2세는 1457년 국가안보를 이유로 골프금지령을 내렸었다. 잉글랜드와의 전운이 감도는 상황에서 국민들이 궁술 연마를 등한시한 채 골프에 푹 빠져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골프’라는 단어가 사용된 최초 문헌은 아이러니하게도 골프금지령인 셈이었다.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한 것은 아니지만 우리나라도 1971년 2월 대선을 앞두고 처음으로 공무원 골프금지령이 내려졌었다. 1993년 김영삼 대통령은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린다는 이유로 골프를 치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이 자연스럽게 공무원 골프금지령으로 굳어졌다. 이후 나라경제가 어렵거나 공무원들의 기강을 바로 세울 필요가 있을 때면 골프금지령은 단골손님처럼 나타났다 슬그머니 사라지곤 했다. 현 정권도 앞선 MB정권에 이어 골프금지령을 고수하고 있다. 이제는 골프가 정치적 희생양 혹은 볼모 정도로 비쳐져 더 이상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공무원 골프금지는 정치행위

정부가 공무원 골프금지령을 내린 것은 알려진 바와 같이 민간업자와의 유착을 염려한 기강확립 차원이다. 골프장 경영자들이 최근 공무원 골프금지령을 해제해 달라고 청와대에 탄원서까지 제출한 사실에서 보듯 공무원은 골프장의 큰 고객이었던 모양이다. 그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시점과 골프장업계가 경영난을 호소한 시점이 거의 일치하는 것은 우연일까.

하지만 모든 공무원이 접대골프만 즐길 것이란 발상에서 문제가 꼬인다. 게다가 골프금지령은 중앙부처와 달리 지방자치단체에서는 거의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세금을 더 걷으려고 고객 유치를 위해 공무원들이 발 벗고 나서는 지자체도 있다고 한다. 만약 어느 용감한(?) 중앙부처 공무원이 나서서 헌법상 보장된 행복추구권을 돌려 달라고 나선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실제로 이런 일이 발생한다 해도 정부의 대응논리는 옹색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21세기 문명사회에서 주말에 공무원이 골프를 친다고 불이익을 주는 나라가 있다면 이해가 될까. 15세기 스코틀랜드가 안보를 이유로 금지령을 내렸지만 전쟁 결과는 스코틀랜드의 참패였다.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여가선용의 욕구를 공권력으로 억제할 수는 없는 것이다.

산업 차원 발상의 전환 필요

골프는 정부의 공무원 기강확립 수단이 무색하게도 이미 세계적인 문화현상이 돼 버렸다. 골프용품, 패션, 건설, 미디어, 선수육성 아카데미가 복잡하게 얽힌 거대 산업으로 자리잡았다. 우리나라도 450만명이 넘는 동호인에다 스크린골프로 만족하는 잠재적인 동호인까지 그 수를 헤아릴 수 없다. 게다가 박인비를 앞세운 여자골프는 미국과 함께 세계 골프계를 양분하고 있고,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의 유력한 금메달 후보로 꼽히고 있다.

그런 만큼 이제 한국골프는 세계 골프계의 주역임을 자부해도 좋은 위치에 와 있다. 때마침 2015년이면 세계 골프의 눈이 한국에 쏠린다. 미국과 세계연합팀(유럽 제외) 간 남자골프대회인 프레지던츠컵이 아시아에서는 처음 인천에서 열린다. 개최국 행정수반이 명예 대회장이 되는 관례에 따라 박근혜 대통령도 싫든 좋든 골프장을 방문하게 돼 있다. 그때도 공무원은 골프를 칠 수 없는 국가여서는 안 된다. 공무원 골프금지령을 포함, 골프산업 육성과 관련된 정부의 획기적인 발상의 전환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서완석 체육부 국장기자 wssu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