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박수진 (10) 한나호에 감동한 선박수리 업체… 1/4 가격에 “OK”
입력 2013-11-11 17:22
팔라우공화국에서 고장난 프로펠러 수리와 관련해 잊지 못할 일화가 있다. 당시 수리는 필리핀에서 하게 됐는데 어느 날 드라이독(선박의 건조 또는 수리를 위해 선체를 독으로 끌어올리는 것) 업체의 한 사장이 찾아왔다. 그의 이름은 글렌이었다. 그는 우리 배에 잠시 머무는 동안 선원과 선교사들의 행동을 지켜봤다. 무료 치과진료 모습을 비롯해 환자들에게 점심식사를 제공하는 장면을 살폈고 갑판 뒤에서 봉사하는 형제들을 흥미롭게 봤다.
다음날 글렌은 견적서를 갖고 왔다. 점잖고 미남형인 그는 뭐든지 들어주겠다는 표정이었다. 마침 팔라우에서 오신 찰스 목사와 필리핀 장 장로 등 10여명이 함께 있었고 모두들 한 마디씩 거들었다.
“한나호는 비영리 선박입니다.” “모두 자원봉사자들이지요.” “모든 선원이 무보수이고 선교비를 내고 승선합니다.” 찰스 목사님은 30년 전 한국교회에 유행하던 말씀까지 전했다. “나그네에게 물 한 모금을 대접하면 주님께서 외면치 않으시고 축복해주십니다. 한나호를 수리해주면 주님께서 당신의 사업을 축복하실 것입니다.”
그날 글렌이 갖고 온 견적서에는 8만 달러가 적혀 있었다. 나는 견적서를 두 손으로 잡고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원래는 13만 달러를 예상했었다. 그런데 다음날 글렌은 다시 방문했다. 6만 달러면 충분하다는 것이었다. 나는 약간 욕심을 부려 물었다. “혹시 가격을 더 낮출 수는 없겠는가?” 글렌은 “내일 다시 오겠다”며 떠났다.
그날은 목요기도회가 있던 날. 우리는 글렌의 마음을 감동시켜 달라고 기도했다. 다음 날 글렌은 5만 달러의 견적서를 갖고 찾아왔다. 우리는 정말 기뻤다. 드디어 한나호는 드라이독으로 옮겨졌다.
드라이독을 할 때마다 물탱크를 청소했다. 물탱크는 전체 400t 용량으로 10개 탱크로 나뉘어 있었다. 청소는 외부에 맡기지 않고 한나호 선교사들이 직접 했다. 탱크 내부에 들어가 녹을 제거하는 일부터 시너를 바르고 페인트칠까지 했다. 공기가 통하지 않는 환경에서 인체에 해가 될 수도 있었다.
글렌은 이를 보고 깜짝 놀랐다. 그는 “물탱크 청소는 필리핀 하급 노동자도 회피하는 일이다. 호흡기에 문제가 올 수 있기 때문에 반드시 30분 일한 뒤 새로운 공기를 마시고 들어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바로 그때 아내와 다른 자매들이 온통 수건으로 뒤집어쓴 모습을 하면서 물탱크에서 나왔다. 우리는 그날 드라이독 청소 노동자 300명을 초대해 바비큐 파티를 열었고 전도 집회도 개최했다. 글렌도 와 있었고 고맙다는 인사를 전했다. 집회에서는 60명 정도의 근로자들이 예수를 믿기로 손을 들었다. 모두 하나가 된 기분이었다.
3주 후 글렌 부부와 우리 부부는 저녁식사를 했다. 글렌은 “이것이 최종 견적서”라며 서류를 건넸다. 3만4000달러였다. 그는 “이 가격에서 한푼도 깎지 말아 달라”고 말했다.
글렌의 고백은 이랬다. “한나호 같은 선박 수리는 처음이었습니다. 선장들은 수리할 때 외부 호텔에서 잘 먹고 지내는데 한나호 선장님은 똑같이 노동자들과 일하며 지내더군요. 자매들이 물탱크 청소를 하는 것은 내 평생 처음 봤습니다. 수리하면서 조선소 근로자들을 위해 치과 진료를 하고 바비큐 파티를 열고 전도하는 배도 처음이었습니다.”
글렌은 “선박 수리에는 선주 측과 본선의 기관·갑판 책임자들이 조선소 기술진과 인상 쓰며 싸우는 일이 태반인데 한나호에는 형제자매들이 웃어서 분위기가 밝아졌다”며 “지금은 형편상 가톨릭교회를 다니지만 나중엔 기독교회로 옮기겠다”고 말했다.
정리=신상목 기자 smsh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