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형 칼럼] 회개

입력 2013-11-11 17:17 수정 2013-11-11 21:46


최근 독일 다름슈타트의 여성 개신교 공동체인 마리아자매회를 방문했을 때, 가장 많이 들었던 단어가 ‘회개’였다. 여성 수도사들은 회개야말로 하나님을 만나는 일차 관문이라고 했다. 회개는 일회로 끝나지 않고 매일의 삶에서 반복되어야 한다고도 했다. 한 여성 수도사는 이렇게 말했다. “하나님을 만나고 싶다고요? 먼저 회개해야 합니다. 회개하면 하나님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회개는 마리아자매회의 일상으로 바실레아 슐링크가 65년 전에 자매회를 시작한 목적 자체가 독일의 국가적 죄를 회개하기 위해서였다. 결국 마리아자매회는 회개의 공동체인 셈이다. 매일 회개의 삶을 살아서인지 마리아자매회에서 만난 여성 수도사들의 얼굴은 맑디맑았다. 그들은 이방인이 보기에 형편없는 음식을 먹고, 기도하고 노동하는 단조로운 삶을 살고 있었지만 모습 전체에 거룩한 신성과 깊은 평화, 잔잔한 기쁨이 보였다.

독일 북부 헤른후트라는 작은 마을에서 진젠도르프와 모라비안 형제단이 펼쳤던 위대한 선교의 흔적들을 발견했다. 1700년대에 복음 들고 산을 넘고 강을 건넜던 그들의 열정이 어디에서 나왔는지를 생각해 보았다. 선교 현지에 뼈를 묻겠다는 각오로 스스로의 관을 짜고 나갔던 그들의 헌신 비결은 무엇이었을까? 분명, 믿음의 대상을 만나지 않았다면 그런 삶을 살지 못했으리라. 마리아자매회 사람들은 “회개는 하나님을 만나는 일차 관문”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헤른후트의 모라비안 형제단도 회개를 통해서 하나님을 만났고, 그 만남이야말로 불굴의 복음 전도를 가능케 한 원동력이었을 것이다.

지난 9일 서울 잠실주경기장에서는 늦가을 비가 내리는 가운데 ‘거룩한 대한민국 성회’라는 타이틀의 집회가 열렸다. 한국의 국가적·영적 위기 앞에서 회개하며 기도하기 위해 마련된 모임이었다. 현장에 가지는 못하고 인터넷 생중계를 통해서 집회를 부분적으로 참관했다. 참가 인원이 너무 적어 집회라고 하기에도 민망한 ‘초라한’ 모임이었다. 그러나 비가 내리는 가운데 회개의 기도를 드리며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며 찬양하는 ‘작은 무리’의 모습을 보면서 가슴이 저려 왔다. “우리가 거룩과 회개로 나아갈 때 이 나라는 회복될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한국의 제사장적 부르심을 발견해야 합니다.” 빗방울과 범벅이 된 그들의 소리가 휑뎅그렁한 잠실주경기장에 울려 퍼졌다.

2013년 가을, 주 예수 그리스도는 어디에 계셨을까? 70억이 넘는 비용을 들여 전 세계 수천 명의 기독교 지도자들을 초청한 부산 WCC총회가 열린 벡스코에 계셨을까, 아니면 그 총회를 반대하는 사람들이 모인 집회 현장에 계셨을까? 하나님의 마음과 눈에 2013년에 일어난 가장 위대한 사건은 무엇이었을까?

솔직히 나의 마음은 마리아자매회의 신성 깃든 평화로운 모습의 여성 수도사들에게, 헤른후트의 진젠도르프 무덤에, 텅 빈 잠실 주경기장에서 비 맞으며 이 땅의 황무함을 탄식하며 회개의 기도를 드리던 소수의 무리들에게 가 있었다. 예수님도 거기 계셨을 것만 같다. 최근 만난 어떤 이는 “회개하면 보여요, 정말 보여요”라고 말했다. 독일에서 온 한 여성 목회자는 “회개하면 기적이 일어난다”고 했다.

2013년에 일어난 가장 위대한 사건은 보이는 것이 아닐지 모른다. 한 인간이 진실로 회개하며 하나님의 얼굴을 향해 돌아섰을 때, 하늘은 요동했으리라. 지금 대한민국에는 회개가 필요하다. 회개하면 길(The Way)이 보일 것이다.

이태형 국민일보 기독교연구소 소장 thlee@kmib.co.kr